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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Jan 01. 2020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나의 2019년을 표현하는 단 하나의 단어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육아'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사실 가장이랄 것도 없이 유일에 가깝다), 거의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며, 무엇을 을지 무엇을 입을지를 좌우했으니 말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육아와 아기에 대해 철저히 무지했던 나 자신에게 놀랄 때도 있고, 또 본능적으로 하다 보니 그게 자연스럽고 맞는 방법일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육아책을 읽어보고 육아카페를 파본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육아의 방식이 맞다, 옳다, 최선이다 라는 확신을 갖기는 내가 너무 서투른 엄마이고 사실 그런 건 애초부터 있을 수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아기이고, 하나뿐인 엄마이며, 하나뿐인 관계이니까.


2019년에 또 새롭게 닿은 관계가 있는데 육아 정책 공부를 아주 오래 하신 선생님이다. 며칠 전 그 선생님과 육아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와 닿는, 그리고 위로가 되는 말이 있어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훨씬 건강하고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아이가 어렸을 때 많은 걸 혹은 모든 걸 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매여 살거나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때가 되면 뭘 해주고, 저 때가 되면 뭘 자극해줘야 된다는 것에 대해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많이 찾아도 보고, 되도록 놓치는 것 없이 해주려고 했었다. 

'헝겊책으로 촉감놀이하는 걸 못하고 지나가버렸네.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살까? 에이, 오래 쓰지도 않을 거 새 걸로 사면 아까우니 중고마켓에서 찾아볼까? 직거래 밖에 안되네. 언제 받으러 간담? 안 되겠다, 미안해 토토.'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별 거 아니지만, 생각을 '미안해'로 결론짓는 것, 그것이 반복되는 것은 그리 건강하지 않은 것 같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육아를 하면 엄마는 늘 부족한 사람이 된다. 충분히 공급해주지 못하는 사람, 부족함이 전제가 되는 사랑. 서투른 것은 괜찮다. 하지만 부족한 것이 미안할 일이 되는 것은 괜찮지 않다.

선생님은 아이가 6개월 된 때부터 20년을 내내 워킹맘으로 지내셨다고 한다. 절로 리스펙트 하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아이를 다 키웠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들었다. 나는 오늘 11시 30분 점심 약속에 나오기 위해 어젯밤 12시 30분까지 집안일을 하며 '워킹맘의 일상이 이런 느낌일까?' 하는 가당치 않은 생각을 했는데. 20년이라니.

아이를 다 키워놓고 돌이켜보니 선생님께서도 후회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하셨다.


아이와 많은 일을 '함께'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것. 아이가 못 가는 곳, 하지 말아야 할 일들 빼고는 뭐든지 함께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선을 그어버린 것. 그 선은 내가 즐기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아이 때문에'라는 화살로 꽂힌다.


또 하나는 아이는 충분히 혼자서 세상을 탐색하고 결정 내리고 독립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우리 아이가 놓치는 것 없이 부족한 것 없이 자라게 하기 위해 여러 자극들을 주는데, 또 미안한 마음에 아기를 맡기지도 못하고 자신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면서 전업주부 역할을 지고 간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웬만해선 때를 따라 발달 및 성장하게 되어 있고, 자신이 가야 할 궤도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게 되어있다고. 그저 부모로서 아이가 어떤 분야,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재능이 있는지 캐치할 수 있으면 되고 애정결핍 없이, 아무리 부모가 바쁘고 맞벌이를 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최고로 중요하고 충만하게 사랑을 받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노라고 하셨다.

 

박혜란 님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세상의 모든 아기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거라고 했다. '아이를 키우려고 하지 말고 엄마 자신을 키울 것,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자라는 것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볼 것.' 

책을 아직 몇 장 읽지 않았지만 결국 작가가 하고싶은 말은 애쓰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출산 후 1달에서 아이가 50일 될 쯤까지 산후우울증이 좀 있다가 최근 들어 또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던 요즘이었다. 매일 아기를 보고 설거지하고 재우다가 이러다 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섬뜩해지기도 했다.

마음을 여유롭게 갖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완벽한 부모, 완벽한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여유의 시작이지 않을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은 부모로서 할 만큼 하지만, 결국 아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태어났다. 따뜻함이 깃든 가정과 다정한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 내가 줄 수 있은 좋은 환경의 기반이 될 것 같다. 우리 토토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총명하고 튼튼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아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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