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우탄의 눈물이 맺힌 섬,
칼리만탄에 도착하다

환태평양일기 코너 속에 코너 - 칼리만탄 일기 1탄

by 하쿠나

문득 환태평양 일기인만큼, 이름에 걸맞는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 나는 칼리만탄 섬에 도착했다.


전에 보르네오 섬은 들어본 적 있지만 칼리만탄은 인도네시아에서 논문을 쓰기로 마음 먹은 이후에 처음 알게되었다. 보르네오섬은 사실 칼리만탄섬 북쪽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영토이고, 섬 남쪽 부분은 인도네시아 영토로 칼리만탄이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전체 섬을 두고 보르네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솔직히 말해 이 섬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 어쩌다 한 섬을 두 나라, 아니 브루나이까지 합하면 세 나라가 세워졌는지는 모르겠다. 칼리만탄까지 온 만큼 좀 더 알아봐야겠다.

img3.jpg 이미지 출처: 구글


그러고보니 보르네오라는 이름의 가구회사가 있었던 것 같다. 보르네오 섬은 브라질 아마존 다음으로 세계 최고의 열대우림 지역인데 이곳에서 가구에 많이 쓰이는 원목이 많이 난다고 한다. 내 추측이 맞다면 그래서 가구 회사 이름을 보르네오로 만든 것 아닐까?


웨스트 칼리만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말을 튼 사람은 놀랍게도 나의 논문 담당교수의 조카 페브리였다. 물론 사전에 연락해서 만난 것이긴 하지만 하필 내가 타고 온 저가 항공의 지상 직원이라니! 참 좁은 세상이다. 페브리는 영어를 전혀 못하고, 나는 인도네시아어를 전혀 못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신저를 주고받을 땐 나는 인도네시아어로, 페브리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물론 구글번역기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논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앞서 말했듯이 세계 최고의 열대우림에 세계의 생물 다양성을 책임지던 칼리만탄이지만 팜유 (Palm oil) 산업이 확장되면서 열대우림은 무자비하게 잘려나갔다. 지난 2000-2012년 사이 6백만 헥타르 크기의 열대우림이 사라졌다고 한다. 감조차 안오는 엄청난 크기인데 잠깐 검색해보니 남한 면적이 천만 헥타르 정도라고 하니, 남한의 3/5 정도 크기의 숲이 파괴되었다고 보면 된다. 칼리만탄 열대우림에는 멸종 위기 동물들도 많이 살고 있는데 특히 오랑우탄은 씨가 마를 지경이라고 한다. 어디 환경 문제 뿐인가, 열대우림에서 몇 백년 넘게 살던 원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외국 기업이 땅을 사들이면서 하루 아침에 내쫓기게 된 케이스가 수 천 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 기업들 중에 상당히 많은 수가 한국 기업이다). 팜유 산업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말그대로 일기가 논문 길이가 되버리니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더 이어가도록 하자.


칼리만탄에 거주하는 주민들 중 가장 잘 알려진 부족으로 '다약(Dayak)' 사람들이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주로 자바섬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무서운(?) 소문이 따르는 부족이다. 이를테면 블랙 매직이라고 해서 '부두' 처럼 마음에 안드는 다른 부족 사람들을 저주 한다거나 옛부터 싸움을 치르면 상대방의 목을 쳐서 가져오는데, 그런 풍습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다는 둥의 소문이다.

교수님과 친구들 말로는 편견이 만든 소문이라고 한다. 이번 논문을 쓰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는 친구 디코는 덧붙이기를 '다약 사람들은 신뢰를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해. 신뢰만 얻으면 세상 선한 사람들이지만 배신했다고 느끼잖아? 그 땐 장난 없지.' 라고 말했다.


fig4.jpg 다약 부족의 모습. (이미지 출처: 구글)

사실 오늘 칼리만탄에 도착해서 페브리, 디코 다음으로 세번 째 만난 사람이 바로 다약부족 출신인 니코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약 부족인줄 모르고 있다가 다약이라는 걸 알고는 부쩍 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내가 보여 간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니코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그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전에 일하던 단체에서도 해외 출장 갈 때마다 느꼈지만 '현장' 에 가면 내 계획대로 풀리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철썩 같이 믿고 있던 통역사가 이틀 전에 돌연 못하겠다고 연락이 온거다. 워낙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던지라 허허- 웃으며 그럴 수 있어- 하고 넘겼지만 바로 통역사를 못 구하면 당장 다음 주부터는 칼리만탄 백수가 되는 거다.

사실 반백수 신분이긴 하지만 이렇게 멀리까지 백수를 하러 온 건 아니니깐, 그렇게 두고 볼 수는 없다. 내일은 꼭 니코가 좋은 소식을 갖고 오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