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누군가의 도움과 친절로

환태평양일기 코너 속의 코너 - 칼리만탄 일기 2탄

by 하쿠나

아침 일찍 칼리만탄 원주민 인권단체인 링카르 (Link-AR) 사무실로 출근했다. 무슬림 점심기도가 길게 잡혀있는 금요일이라 늦지 않게 가려고 부쩍 서둘렀다.


웨스트칼리만탄 주도 Pontianak 의 금요일 아침풍경


링카르 사무실에서 또 다른 다약(Dayak)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이름만 봐서는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지오바니(Giovanni)가 다약 부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먼저 다약은 다 같은 다약이 아니라는 것. 사실 부족 수로 따지면 서른이 넘는데다 서브부족까지 치면 훨씬 많은 서로 다른 다약 부족이 있지만 (생활방식이나 문화는 얼추 비슷하지만 언어가 다르며 원래는 다약이라고 부르지 않고 각자의 부족명이 있었다고)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칼리만탄에 사는 부족들을 하나로 다 묶어 다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약'이라는 단어조차, 인도네시아에서 기존에 쓰던 이름이 아니라 네덜란드어로 '개 같은' 을 뜻하는 dajakker 다자커르에서 다약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약 부족에 대한 역사를 설명해주던 지오바니 (는 사진에 없고, 그의 노트북)


다약을 특히 무서운 부족이라고 편견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특유의 '헤드헌터' 풍습 때문인데, 예전에 부족 끼리 싸우면 꼭 상대방의 목을 따오는 전례가 있었다고 한다. 또 어떤 부족은 성인 남성이 결혼을 허락받을 때도, 신부의 아버지가 특정 부족을 콕 찝어서 목을 따오라고 미션을 주었고 실제로 목을 따와야지만 신부를 데려갈 수 있는 용기 있는 남자로 인정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의 형태가 가로 40미터 길이로 연결되어 있는 롱 하우스로 보통 서른 다섯 명의 식구가 함께 사는 주거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전에는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가 통용되는 공동체였어서 35 가족이 정말로 피가 섞인 대가족이었다고.


다약 부족의 전통 가옥인 롱하우스. 이미지출처: 구글

한편, 지오바니로부터 다약 부족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것도 참 재미있고 유익했지만 나는 당장 인도네시아어-영어가 능통한 통역사를 구해야하는 급한 불을 꺼야만 했다. 팜유농장 내 원주민인권활동을 하는 친구 디코와 나는 오전 내내 우리가 아는 모든 인도네시아인/칼리만탄에 연고가 있는 이들에게 SOS 를 청했다. 페이스북 단체방은 물론 태국에 있는 인도네시안 교수님, 멜번에 출장 가 있는 칼리만탄 전문가 선생님, 전에 태국에서 인턴할 시절 사수였던 인도네시아 언니까지...평소 인간관계를 간신히 유지하던 나지만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는 얄미운 친구가 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연락을 돌렸다.

외국인들에게 유난한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성향에 큰 은혜를 입고 정말 말도안되는 사람들의 연락처 (나의 논문 주제를 정하는데 큰 영감을 주었던 학자님의 전화번호까지도!) 와 이메일까지 받았으나 결국 당장 내일부터 도와줄 수 있는 통역사를 구해준 건, 다름 아닌 어제 만난 다약 친구 니코였다. 아무래도 내가 니코에게 잘 보였던 것 같다.

인니어-영어 통역사를 만나기로 한 접선지


연락처를 전해받고 당장 1시간 후에 카노피 까페에서 접선을 하기로 했다.


니코가 연결해준 그녀의 이름은 윌다.

흔히 말하는 사감 선생님이 주로 쓰는 윗꼬리가 살짝 올라간 나비모양 안경을 쓰고 있었다. 왠지 그녀의 이름과도 어울리는 모양이였다. 그녀는 자카르타에서 일을 하다 최근에 백수가 되어 칼리만탄으로 귀향했다고 한다.

나에겐 다행히도,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소녀시대의 태연을 좋아하고 태양의 후예를 재밌게 봤다고 했다. 한국어에도 관심이 많지만 대화할 상대가 없어 연습을 못한다고 했다. 한글은 쉬운 것 같은데 '받침'은 좀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윌다는 영어를 독학으로 익혔다는데 상당한 실력자였다. 꼭 실력자가 아니었더라도, 설령 케이팝과 케이드라마의 팬이 아니라고 할지언정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윌다, 너만 괜찮다면, 함께 하고 싶어."

다행히도 그녀의 대답은 YES. 고맙게도 윌다는 당장 내일부터 합류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도움과 친절로 마음의 평화를 찾은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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