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 일기 코너 속에 코너 - 칼리만탄 일기 3탄
드디어 현장으로 떠나는 아침이다.
사실 칼리만탄에 도착한 날을 제외하고 하루 정도 지연된 건 일도 아니다.
전에 아프리카로 출장을 많이 다닐 땐, 모든 출장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변수가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 중 제일은 늘 '비자' 이슈였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비자가 해결이 안 되어 손에 땀을 쥐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떠나기 직전 해결이라도 되면 다행인 건데 한 번은 아프리카 두나라(케냐와 에티오피아)를 연달아 출장 가야 했던 때가 있었는데 두 번째 행선 국인 에티오피아 비자가 나오지 않은 채, 일정대로 케냐로 출국을 해야만 했었다. 출국 당일, 체크인 짐을 보낸 후에야 비자 컨펌 났다고 대사관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FM으로 유명했던 당시 나의 본부장은 회항을 명령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정으로 일단 비행기를 탄 후
케냐에 도착해서 비자를 받았던 일화가 있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비자 내주기로는 세상 까다롭기로 소문난 에티오피아로서는
한국인이 주케냐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프레스 비자를 받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굳이 동떨어진 비자 이야기를 한 건,
개발도상국에서 일을 하거나 출장을 다니거나 여행을 할 땐 일상처럼 겪는 게 변수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뭐 개발도상국뿐이겠는가. 변수로 가득한 게 삶인데.
그나저나 이번 칼리만탄의 첫 변수였던 '사라진 통역사' 문제를 해결한 후
이제 뭐든 잘 풀릴 거야- 하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긍정을 한 게 문제였다.
웨스트 칼리만탄의 중심부쯤 위치한 상가우(Sanggau) 근처 팜유 농장에 가는 길에
식상하게도, 파란만장한 여행기라면 한번쯤은 나올 법한 타이어 펑크와 갑자기 연료가 떨어져
진흙길에 차가 빠지고 트럭에 밧줄을 매달아 끌고 가는 등의 사건이 하나씩 벌어졌지만 무덤덤하게 넘겼다.
그랬으나.
공동체 생활을 중시하는 시골 세팅의 마을에 도착하면 으레 거쳐야 하는
마을 대장을 만나기 위해 마을회관에 도착한 순간, 상상하지도 못한 있어서도 안될 상황이 벌어졌다.
일단, 나는 논문을 위해 여성노동자들을 인터뷰를 하러 온 것이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저 멀리 한국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역량강화 훈련을 하러 온 줄 알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 마을에는 여성 노동자가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찾는 팜유 회사 소속의 노동자가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지난 며칠간 정전이라는데 노트북이랑 휴대폰은 대체 어떻게 충전할 건지!!!!!
이곳에서 주로 사업을 하는 니코가 왜 항상 뒷목을 잡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여성노동자를 인터뷰하러 어렵게 통역사를 구하고, 펑크 난 타이어와 진흙길까지 헤쳐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오랜만에 '멘붕'이 왔다. 내가 너무 자만했나 싶었다.
통역사가 사라졌을 때, 이 정도 변수 아무것도 아니라며, 차량 때문에 두세 시간 지연되는 건 귀여운 정도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인도네시아는 자존심이라도 상한 듯했다. 우리 그렇게 만만하게 볼 데 아니라는 듯 코웃음 치는 듯했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아니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회사 소속은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의 여성노동자를 인터뷰할 수 있다고 하고 (이 또한 곧이 곧대로 믿을 일은 아니다, 내일 두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지) 내가 이 마을 여성들을 훈련하러 온 게 아니라는 오해는 좋게 좋게 풀었다. 마지막으로 마을 추장님께서 나로서는 복음을 전해주셨는데 지난 며칠간 끊어진 전기는 오늘 저녁을 기점으로 다시 들어올 것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여전히 나는 누굴 인터뷰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고
내일 인터뷰할 수 있게 연락을 돌리겠다고 했지만, 누가 나타날지, 혹은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의 정신적 지주인 디코는 내일 수마트라 섬으로 출장을 떠난다. 방심할 상황이 아니다.
잔뜩 올라온 열을 식히기 위해 샤워를 했다. 또 하나의 귀여운 변수는 화장실이었다.
마을 회관에서 자게 된 나는 2009년 남수단 이후 가장 열악한 샤워시설을 접하게 되었다. 2009년 남수단에서는 드럼통에 빗물을 받아 씻었는데, 물 표면에 벌이 수 십 마리가 떠다녀서 씻기 전에 벌들을 먼저 건져내고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 망을 봐주면 아침 해가 뜨기 전 화장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샤워를 했었다. 이 곳 역시 욕조만 한 크기의 통에 빗물을 받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는 형태였는데 정체 모를 벌레들이 둥둥 떠다녔다.
30대가 넘어가면서 부쩍 숙소는 좀 좋은 곳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었다.
아무리 아프리카 오지 출장을 스무 번을 넘게 간들, 열악한 숙소가 편할 리 없다. 게다가 습기가 굉장한 날씨지만 마을회관에는 선풍기가 하나도 없었다. 창문은 있지만 방충망이 없어 창문을 열기가 무섭다.
2009년 남수단의 나는 2017년 칼리만탄에 있는 나에게 말한다.
'그래도 총소리 안나고, 지붕이랑 벽이 있는 게 어디야?'
밤이 되자 마을에 있는 모든 벌레들이 며칠 만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마을 회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상가우에서의 첫날밤이 꽤 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