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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Feb 28. 2021

전세금 빼서 지중해 도시로 이사 갑니다

이 코로나 시국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는 4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있고 전세금을 받아 터키 남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도시 페티예 (Fethiye)로 이사 아니 이주를 가기로 했다. 우리라 하면, 나와 남편 그리고 만 21개월 딸 토토를 데리고 말이다.


터키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터키에 일자리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럼 왜? 어쩌다?어째서? 일은? 생활비는? 아이 교육은? 이 코로나 시국에?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지난 몇 달 간, 터키에 가도 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질문 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적당한 고민과 대화 끝에 지금 이 시기에 터키 지중해 도시로 이주를 결정했고, 남편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우리의 후보지인 안탈리아, 칼칸, 페티예에 사전 답사를 가 있다.



그 많은 나라 중 왜 터키였을까


사실 우리 부부가 터키라는 나라를 콕 찝어 정했다기보다 남편이 '안탈리아' 라는 터키 남부의 지중해 도시에 꽂히면서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남편이 즐겨보는 주식 투자 관련 유투버가 30대-40대에 은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일단 탈서울을 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집세와 생활비가 저렴하면서 보건, 교육, 치안 등의  인프라가 좋은 도시들을 소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안탈리아였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었던 이 유투버의 한 마디에 남편은 완전히 꽂혀버렸다. 그 때부터 매일 안탈리아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영상만 봐서는 정말 천상의 도시 같아 보였다. 우리는 특히 그 곳의 자연환경 (배산임수, 미세먼지 제로, 1년 중 300일이 따뜻한 날씨)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안정적인 소득이 없을 가능성을 전제로 할 때 저렴한 물가도 큰 몫을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날 결정을 어떻게 하겠는가.


다 좋은데...어떻게 가, 지금. 코로나도 그렇고 거기 가면 누가 일해? 둘 다 놀아?


작년 말 까지만 해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결국은 지중해로 떠나기로 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안탈리아 같은 여유롭고 환경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품을 수 있지만 누구나 언제든 떠날 수는 없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 정기적이든 비정기적이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이 있어야 한다. 모은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몇 십씩, 많게는 몇 백 씩 나가는 빚이 없어야 한다. 현지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영어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외국 생활과 새로운 환경에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간다와 태국에서 따로, 터키에서 또 같이


남편도 나도 결혼 전에는 각자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한국에 정착할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토토가 우리에게 오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잠시 결혼식을 치루고도 신혼여행 후 나는 태국으로, 남편은 우간다로 돌아갔었다. 그러다 토토가 마법처럼 나타나서 출산을 앞둔 한 달 전, 첫 신혼집을 서울에 얻게 되었고 그렇게 2년이 조금 안된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지금은 아이가 많이 어리지만, 조금 더 크면 해외로 다시 나가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이 외에도 아이를 생각하면 못 떠날 수도 있지만, 우리 부부의 생각은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봤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아마 영영 떠나지 못할 것 같았다.


터키 행을 결정하기까지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컸다. 10년 정도 국제개발 쪽 일을 하다 임신,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다. 1년 정도 취업 준비를 했는데, 단 한 곳도 합격되지 못한 것 만으로도 멘탈이 상당히 흔들렸는데 터키로 떠난다는 건 앞으로 나는 일을 안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과 동시에 왠지 취업에 실패해서 다른 대안이 없이 도피 이주하는 것 같았다.


한편, 한국에서 취업을 해서 하루 최소 12시간 (근무시간 9시간, 출퇴근 2시간, 준비하는 데 1시간)을 소비하고 시들시들한 파김치처럼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물론 맞벌이가 된다면 남편과 분담해야겠지만) 만성피로지만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복작복작한 서울 곳곳을 다니는 일상을 상상해보았다. 내가 그러자고 한국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게 맞나?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하더라도 보람을 느끼고 만족할 만한 직장이 존재하기는 할까?

정말로, 정말로, 국제개발 일을 안하면 못 견딜 정도로 그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할 수 있는 것도 경력도 이것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어가려는 걸까?

이루 다 쓰지 못할 여러 고민과 질문들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가 원하는 많은 것들이 정말 내가 원해서인지 아니면 타인이나 사회가 나에게 말했던 것들의 영향을 받아서 원하게 되었는지 물음표를 가지게 되었다.


결혼 전에는 한국에서의 삶이 싫었다. 어떻게든 외국에 나갈 궁리를 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키워보니 한국이 편리한 면이 많았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며 친정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그 어떤 꿈의 도시라도 줄 수 없는 (음, 돈이 엄청 많다면 이 명제는 달라질 수도 있다) 엄청난 메리트였다. 터키 이주를 결심하면서 마지막까지 마음에 걸리는 것 역시, 이 점이었다. 내 마음의 안정도 좋지만, 토토가 가족에게서 받는 건강한 에너지를 더 이상 못 받는 게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터키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남편의 사전 답사도 끝나간다. 우리 마음에 완벽히 드는 100%의 드림 하우스는 못 찾았지만 지중해를 앞에 둔 볕이 잘 드는 집을 구했다. 오랜만에, 큰 변화를 앞두고 설레이는 날들이다.



[덧붙임] 

터키 페티예 이민 & 정착 과정을 브이로그로 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방문해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oVEe8eHKqxNPPR34_2i_Uw/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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