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현재 세계 최대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로 군림하는 중이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하여 영화, 방송 프로그램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가운데 최초로 전 세계 가입자 수 2억 명을 돌파했다.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기 지난 1월엔 역대 최고치인 895만 명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영어권에선 회사명 '넷플릭스'가 동사로 쓰일 정도로 인기가 엄청나다.
처음부터 넷플릭스가 대중문화의 반열에 올랐던 건 아니다.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비디오 대여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한 골리앗 '블록버스터'에 맞서는 다윗 취급을 받을 정도로 회사 규모가 작았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어떤 방법으로 블록버스터를 꺾을 수 있었을까?
숀 코덴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넷플릭스 VS. 월드>는 책 <넷플릭스드: 에픽 배틀 포 아메리카스 아이볼스>를 원작으로 삼아 넷플릭스의 탄생과 발전사를 되돌아본다. 제작진은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 마크 랜돌프를 비롯한 넷플릭스의 전직 직원들, 경쟁 업체였던 블록버스터의 전직 직원들, 언론인 등 여러 관계자를 만난다. 다양한 뉴스 영상과 신문 자료도 활용한다. 재연 장면엔 애니메이션을 쓰기도 한다.
1막은 넷플릭스의 탄생을 되짚는다. 2막에선 온라인 DVD 대여 시장에서 블록버스터와 벌인 경쟁을 살펴본다. 마지막 3막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에 주력하는 넷플릭스의 현재를 조명한다. 아쉽게도 또 다른 공동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현재 넷플릭스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테드 서랜도스를 직접 인터뷰하지 못했다. 어떤 까닭인지 알 순 없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담았다면 영화는 한층 풍성해졌을 것이다.
마크 랜돌프와 리드 헤이스팅스는 인터넷 초창기 무렵인 1990년대 후반에 인터넷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다가 시장 규모가 80억 달러에 달하던 비디오 대여 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블록버스터가 장악하고 있던 미국의 비디오 대여점은 1만여 편이 넘는 영화, 3박 4일 대여, 매일 늦게까지 영업 등 장점이 많았다. 반면에 직접 가야하고 인기 영화가 금방 동이 나는 등 단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연체료 제도에 불만이 컸다.
두 사람이 비디오테이프 대여를 전자상거래 방식으로 바꾸는 건 무리였다. 비디오테이프가 크고 무거운 데다 튼튼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고 가벼운 저장매체인 DVD가 나오면서 두 사람의 아이디어는 가능해졌다. 이들은 1997년 넷플릭스를 설립한 후 고객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해 매달 구독료 20달러를 지불하고 원하는 영화를 최대 3개까지 선택하면 집으로 배달해주고 연체료 걱정 없이 무제한 감상하다가 반송 봉투에 넣어 가까운 우체통을 이용하여 반납하는 획기적인 대여 서비스를 도입했다.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가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 시장을 놓고 격돌하는 과정은 회사 경영진의 오판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경제학적 교훈을 남긴다. 블록버스터는 2000년 자금 압박을 시달리던 넷플릭스로부터 5천만 달러에 지분 49%를 인수하는 거래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한다.
뒤늦게 2500만 달러를 투자하여 2004년 온라인 대여 서비스 '블록버스터 토탈 액세스'를 출범시켰지만, 새롭게 CEO로 취임한 세븐일레븐 출신의 제임스 키스가 블록버스터 매장을 복합 쇼핑 공간으로 확장하는 사업에 돈을 쏟아부은 탓에 회사가 기울고 만다. 전성기엔 미국에만 3000개, 전 세계에 9천여 곳이 넘는 블록버스터 매장이 있었지만, 현재 남은 건 단 한 곳에 불과하다. 현재 오리건 주 밴드시에 있는 마지막 블록버스터 매장은 성지 소리를 듣는 관광 명소가 자리를 잡았다.
업계의 공룡 블록버스터가 몰락한 후 넷플릭스는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처음엔 영화 다운로드 사업에 관심을 갖다가 영화사 측이 영화 파일 저장을 반대해서 스트리밍 방식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 2년은 소비자가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도록 무료로 서비스를 했다. 2010년경엔 새로 출시하는 스마트폰, 아이패드, 게임기에 서비스 연동이 가능해졌다.
2013년엔 축적한 자료와 시스템을 기반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를 선보였다. DVD를 대여하던 기업이 어느 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고 급기야 자체 콘텐츠 제작까지 하자 할리우드는 깜짝 놀랐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TV 시리즈 제작은 <루머의 루머의 루머>, <기묘한 이야기>, <더 크라운>,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으로 이어졌다. 영화는 데이빗 핀처(맹크), 알폰소 쿠아론(로마), 코엔 형제(카우보이의 노래), 마틴 스콜세지(아이리시 맨), 봉준호(옥자), 폴 그린그래스(7월 22일), 스파이크 리(다 5 블러드) 등 거장 감독들과 손을 잡았다. 올해 넷플릭스는 콘텐츠 투자로 17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규모로 본다면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영화사(디즈니, 파라마운트, 유니버셜, 워너, 소니)에 버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한 편으로 수익을 내는 영화사들과 달리 넷플릭스는 전 세계 구독자들의 정기 결제로 콘텐츠 제작비를 충당하는 안정적인 구조를 자랑한다. 장기적인 수익 모델이 필요했던 영화사들은 넷플릭스의 성공을 보고 앞다퉈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
영화를 감상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꾼 넷플릭스는 이제 과거 블록버스터의 위치에서 후발 주자들과 경쟁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의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향후 어떤 형태의 서비스가 흥할지도 알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넷플릭스를 설립한 마크 랜돌프는 말한다.
"우리 목표는 처음부터 확실했어요. 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거예요. 계속 그 정신을 고수한다면 사람들이 오락거리 자체에 질리지 않는 한 넷플릭스 같은 회사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