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함께 한 친구 사이인 마이클(마이클 안젤로 코비노 분)과 카일(카일 마빈 분). 둘은 프랑스의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중 마이클이 카일과 결혼을 앞둔 약혼녀 에바(주디스 고스레쉬 분)와 잠자리를 한 적이 있다고 느닷없이 털어놓은 탓에 크게 다투고 절교한다. 몇 년 뒤 에바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화해한다.
영화 <이 죽일 놈의 우정>의 포스터만 본다면 사이클 또는 사이클리스트를 소재로 삼은 영화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포스터만 그럴 뿐, 기실 내용은 수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남성(남녀가 아니다!)의 질긴 인연을 담았다. 혹시 퀴어 영화인가? 그렇진 않다. <이 죽일 놈의 우정>은 우리나라 제목(원제는 '등산'을 의미하는 <더 클라임>이다) 그대로 남성 간의 애증에 가까운 우정을 다룬다. 연출은 마이클 역으로 분한 마이클 안젤로 코비노가 맡았다. 각본은 현실에서도 죽마고우인 마이클 안젤로 코비노와 카일 마빈이 함께 썼다.
<이 죽일 놈의 우정>은 2018년 제34회 선댄스 영화제 단편영화 부분에 상영한 바 있는 8분짜리 단편 영화 <더 클라임>을 장편 영화로 확장한 경우다. 단편 영화 <더 클라임>은 <이 죽일 놈의 우정>의 도입부인 '사과'에 사용되었다. 마이클과 카일이 프랑스의 한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8분 동안 원테이크로 보여주는 '사과'엔 <이 죽일 놈의 우정>의 주제와 스타일을 오롯이 나타난다.
하필 자전거를 타던 중에 마이클이 에바와 있었던 과거를 카일에게 말한 이유는 자전거로 자신을 쫓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카일을 피해 도망치다가 그만 다른 사고를 친다.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남성의 우정을 다루되 근사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반영하여 우스꽝스럽게 묘사할 따름이다. 형식은 원테이크 형식을 써서 인물 간의 대화와 케미 중심의 영화가 될 것임을 제시한다.
<이 죽일 놈의 우정>은 도입부 '사과'를 포함한 에바의 장례식이 나오는 '영원히 안녕', 추수감사절 가족 모임이 무대인 '감사', 카일과 마이클이 스키장에 놀러 간 '엉망진창', 총각파티를 다룬 '그만', 카일과 마리사(게일 랜킨 분)의 결혼식을 그린 '성숙', 에바가 떠난 이후인 '영원한 우정'까지 7개 챕터로 구성되었다. 영화는 '사과', '영원히 안녕'까지 시간 순서대로 진행한 다음 '사과' 이전 시간대로 이동하여 4개 챕터를 보여준다. 그런 다음엔 에바의 죽음 이후로 이동한 '영원한 우정'이 이어진다.
십여 년 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7개 챕터 동안 마이클과 카일은 화해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길 반복한다. 원제 <클라임>이 의미하는 '등산', 바꾸어 말하면 산악 도로의 자전거 타기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듯이 말이다. 친구 또는 형제처럼, 때론 연인처럼 행동하는, 이타심과 이기심을 오가는 마이클과 카일의 관계 속에서 남성들의 우정에 씌워진 의리란 신화는 깨지고 강한 남성성은 부정된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기쁨과 슬픔, 축하와 질투, 다툼과 화해, 오해와 이해, 진심과 거짓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현실의 우정이 남을 뿐이다.
<이 죽일 놈의 우정>은 전체 쇼트가 15개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원테이크 형식에 충실하다. 몇몇 장면의 카메라 이동은 전체 분량을 원테이크로 만든 <버드맨>(2015)이나 < 1917 >(2020)처럼 CG의 힘을 빌린 인상이 짙다.
챕터 전체를 보통 원테이크로 촬영한 탓에 연극을 보는 느낌도 들고, 인물 간의 감정이 형성하는 긴장감과 대화의 리듬감을 긴 호흡으로 지켜보는 맛이 있다. 한편으로는 원테이크의 연속성이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마이클과 카일의 관계를 은유한다는 상상도 스친다.
<이 죽일 놈의 우정>은 마이클과 카일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문을 열고, 마이클과 카일, 그리고 카일의 아들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문을 닫는다. 같은 장면이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도입부에서 마이클과 카일은 쫓고 쫓기듯 자전거를 탄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일은 아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주고 마이클은 옆에서 돕는다.
넘어져도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는 카일의 아들, 함께 앞을 향해 자전거를 타는 세 사람을 통해 영화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지라도 삶은 계속되고 유대 관계도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의 정서와 다르기에 누구나에게 권하고 싶진 않지만, 누군가에겐 마음에 쏙 들법한 독특한 코미디 영화다.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