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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Dec 22. 2017

영화 리뷰 <고스트 스토리>

올해 만날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영화


교외의 작고 낡은 집에서 지내던 연인인 작곡가 C(케이시 애플렉 분)와 M(루니 마라 분).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C가 세상을 떠나자 M은 큰 슬픔에 잠긴다. 병원 영안실에서 고스트가 되어서 깨어난 C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집으로 돌아간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M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고, 고스트는 묵묵히 그녀를 지켜본다. 몇 년이 지난 뒤에 M은 집을 떠나지만, 고스트는 계속 그곳에 머문다.


인간 세계에 남은 유령은 예전부터 사랑받아왔던 이야깃거리다. 소설, 영화, 텔레비전은 인간 앞에 나타난 유령을 몇 가지 형태로 다루었다.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 홍콩의 <천녀유혼>, 뉴질랜드의 <프라이트너>는 인간과 다름없는 육체·반투명한 형체·생전 외모가 부패한 모습 등 유령의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주었던 사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인간 세계를 떠나지 않은 유령이란 <고스트 스토리>의 설정은 언뜻 <사랑과 영혼>을 떠올린다. <사랑과 영혼>은 기승전결이란 구조, 익숙한 유령의 형태, 멜로 장르 등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고스트 스토리>는 <사랑과 영혼>의 반대편에 놓여있다.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기승전결은 무시된다. 장르의 구별 따윈 무의미하다. 심지어 유령은 하얀 침대 시트를 뒤집어쓰고 나온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전 세계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전통적인 고스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흰옷을 입은 망자의 모습' 고스트가 보여주는 '사랑과 이별'



<세인트 닉><파이어니어><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를 연출한 경력을 지닌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2016년 <피터와 드래곤>을 만든 직후 대중들이 쉽게 즐기는 영화와 평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탐구하는 영화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고 털어놓는다. 당시 흰옷을 입은 망자의 모습을 한 고스트에 심취했던 그는 평소 애착을 가지던 다양한 것들, 예를 들면 복도나 문턱, 시간과 그 시간이 우리를 둘러싼 공간에서 작용하는 방법 같은 추상적 개념 등을 결합하여 <고스트 스토리>의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고스트 스토리>의 고스트의 모습은 할로윈 복장을 연상케 한다. 어릴 적 침대에서 아이들끼리 장난치는 광경도 기억난다. 침대 시트를 쓴 고스트가 M을 지켜보는 장면에선 처연함이 묻어난다. 신체를 보여주지 않기에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힘이 있다. <고스트 스토리>의 고스트는 원형에 가까운 유령이자 특별한 서사가 없는 가운데 영화를 이끄는 추동력이다.


<고스트 스토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소설 <유령의 집>의 한 대목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유령의 집>에서 유령들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존재로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주인공의 생각이나 느낌을 떠오르는 대로 쓰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인간 심리의 깊은 곳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접근법은 <고스트 스토리>에 전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상실하는 것들을 통해서도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데이비드 로워리는 재생, 정지, 과거와 미래로 되감는 형식으로 고스트가 느끼는 시간을 재구성한다. 기이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화는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기억과 망각이란 단어를 관객에게 건넨다. 이런 요소들은 '의식의 흐름'처럼 자유로이 펼쳐진다.


루니 마라와 '고스트', 두 배우가 보여주는 내면 연기



<고스트 스토리>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1.33:1의 화면비를 채택하여 고전 영화의 느낌을 준다. 프레임의 모서리를 원형으로 부드럽게 처리하며 화면 위에 한 겹을 더 입히는 '비네트' 효과를 주어 빈티지한 무드도 감돈다. 홈비디오의 정서도 풍기고 스냅 사진 같기도 하다. 엿보는 시각도 감지된다. 인물 전체를 오롯이 담는 화면비라서 고스트를 보여주기에 알맞다.


다양한 반응을 끌어내는 화면비에 대해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고스트 스토리>는 누군가를 상자에 넣고 영원히 가둔 이야기며 그런 상황이 주는 공포가 화면비로 증폭될 수 있다고 여겼다"라고 부연한다. 감독은 고스트와 관객이 동일시 되길 원한다.


<고스트 스토리>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케이시 애플렉과 <캐롤>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루니 마라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고스트 스토리>에서 두 배우는 서로 다른 연기를 선사한다. 루니 마라는 '보이는' 신체의 언어를 사용하여 내면을 묘사한다. 특히, 5분여에 걸쳐 초콜릿 파이를 먹는 대목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침대 시트에 가려진 케이시 애플렉은 '보이지 않는' 신체의 언어를 쓴다. 고스트는 이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관객은 가려진 고스트를 보며 나름대로 상상을 하게 된다. 최소한의 몸짓으로 캐릭터를 소화한 케이시 애플렉은 <프랭크>에서 탈을 뒤집어쓴 채로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열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조지 루카스는 "소리가 영화 감상의 절반"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의 블록버스터는 폭발적인 소리로 무장해야 하고, 제대로 설계된 극장에서 감상해야 제맛을 만끽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의 영화들이 들려주었던 소리의 힘은 대단했고, 현재 많은 상업 영화들에도 소리의 규칙은 적용된다. 


<고스트 스토리>는 조지 루카스의 주장에 역설적으로 다가간다. 정적이 영화를 감싸는 <고스트 스토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고요함과 어둠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유령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 당연히 극장은 필수 조건인 셈이다. 물론, 그 시간대 관객 모두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 해 만날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말길 바란다.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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