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서 와 한 달 살기는 처음이지
2년 6개월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사내연애의 부작용, 성격이 아주 뭣 같은 팀장과의 갈등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기간은 한 달 살기가 유행이었으니, 한 달 정도로 생각했다. 여행하는 기분도 들면서, 나중엔 현지인인척까지 할 수 있는 기간으로 ‘한 달’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을 어디일까.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하진 않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나 홀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고, 자취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내가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던 ‘강릉’이었다.
아빠의 고향이라 어릴 적부터 꾸준히 갔던 곳이고, 3살 터울의 여동생이 치과의사로서 일하고 있는 곳. 그리고 ‘바다’가 있는 곳.
적당히 익숙하면서 낯선 곳인 ‘강릉’으로 정했다.
현실도피(?) 및 안식월을 보내기 위한 곳으로 강릉을 정하자 주위 사람들은 ‘응? 강릉? 거기 뭐 있는데? 차라리 제주도를 가지?’라는 반응과 ‘강릉 좋아하는 건 알았다만, 한 달 살기까지?’라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이런 반응에 나는 ‘제주도는 너무.. 멀어. 강릉은 ktx로 1시간 반이면 간다구’라고 했었다.
부모님은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근데 강릉 안 지겹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심 ‘동생이 있는 곳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장소는 정해졌으니, 숙소를 결정해야 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동생집으로 가겠거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동생집이 넓은 편이기도 했고, 강릉 택지에 위치해, 강릉시내, 경포, 안목카페거리 등등으로 가기도 좋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달 살기를 결정하며 숙소를 알아보니,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현실에 타협하기 위해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첫 퇴사였고, 첫 안식월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값이 비싸더라도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검색을 통해 단기임대가 가능한 아파트를 찾았다. 17~18평 정도 돼 보이는 옛날 복도식 아파트였지만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내부는 깔끔했다. 방 2개, 화장실 1개, 거실과 부엌이 따로 있는 곳이었다. 모든 게 옵션으로 들어가 있어서 말 그대로 ‘몸’만 들어가면 될 곳. 결정적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바다까지는 도보로 10분, 차로는 3분 거리.
바로 주인과 문자를 통해 예약을 했다. 성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4인)까지도 충분한 곳이라 그런지 비싼 편이긴 했지만. 눈 딱 감고 결정했었다. 이때부터였다. 지출을 할 때마다 ‘나를 위한 것이다’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것이.
마지막으로 렌터카를 예약했다. 과거의 지인과 함께했던 강릉 여행에서 이용했던 곳으로 차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사장님의 인상이 좋아, 다음에도 이용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장소, 숙소, 차량까지 준비가 끝났다.
내 마음도 정리가 되었고,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한 달 동안 난 무엇을 할까.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