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사들이 있을 것이다. 직장의 모든 상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한사람쯤은 있으리라.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상사들을 미워한다. 성격이 맞지 않아서, 혹은 일하는 방식이 달라서, 때로는 그냥 싫어서 그들에게 무한한 미움을 주고는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얼굴만 봐도 화가 나게 만드는 직장상사들이 있었고, 내게 모질게 구는 그들을 미워하느라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저 인간들은 도대체 언제나 퇴사하는 거야?’ ‘제발 회사에서 좀 안 마주치면 좋겠어!’ 하는 생각으로 남몰래 뒤에서 이를 갈며 그들의 험담을 해대고는 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 만약 내가 미워죽겠는 그 상사를 미워하듯, 누군가가 내 부모님을 그렇게 대한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200% 솔직하게 이야기하건대, 아마 나라면 절대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무한한 미움을 주고 있는 그 상사의 가족들 역시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나는 이를 직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백화점에서의 한 일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잘 사용하던 백화점 카드에 갑자기 이상이 생긴 탓에 재발급을 받아야 했다. 자주 사용하던 카드가 아무 연유도 없이 갑자기 안 되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화를 해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은행에 재발급을 받으러 상황까지 벌어졌다. 나는 이참에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표해야겠다 맘 먹고는 씩씩거리며 고객창구로 향했다. 그리고 크게 한소리 하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런데 그 순간, 창구에 놓인 안내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한껏 들이마셨던 숨을 피시시~ 내뱉었다.
[지금 앞에 앉아있는 직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가족’이라는 그 단어가 내 마음을 쾅쾅 때렸다. 왜 나는 그전까지 이를 깨닫지 못했던 걸까? 어쨌든 그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깨달은 나는 ‘그래,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조용히 대기석에 앉았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씩씩거리던 스스로의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이날 이후 내 눈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얼굴만 봐도 화가 나던 직장상사들이 처음으로 누군가의 가족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다. 나는 그전까지 단 한 번도 그들을 누군가의 아버지나 아들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눈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니 더는 그들이 밉게만 보이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미움이 사라지고 나니 그들이 다르게 보였다. 미워죽겠는 그 직장상사들 역시 다른 회사원들과 마찬가지로 나름 대로의 외롭고 힘든 회사생활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나나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한 가정을 책임지는, 무거운 어깨를 갖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게 되니 오히려 그동안 내가 너무 미워하기만 한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다 들었다. 우리는 모두 각각의 가정에서 소중한 자식이자 부모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미워죽겠는 그 마음을 조금만 누그러뜨려 보자.
또 하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적어도 회사 동료끼리는, 같은 직장인들끼리는 서로를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해한다. 나의 이 말에 100% 동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드라마 <미생>에서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정말 부당하게 우리를 대하는 상사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런 순간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나의 후배들에게 괜찮은 선배이자 상사일까, 하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 여기에 대해서도 100% 그렇다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어쩌면 나쁜 습관을 고스란히 배워 그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장인들은 대부분이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회사를 다니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실감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흡사하게 걸어간다. 그러니 조금만 마음을 넓게 키워보자. 우리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또한 나쁜 것, 부정적인 것은 나에게서 끝낸다는 생각도 좋다. 회사생활이 꼭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간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나도 회사의 구성원이며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존재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나는 나를 포함한 모든 회사원들을 응원한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인들을!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모든 가장들을! 나는 굳게 지지하며 응원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