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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Aug 08. 2020

이천 년 전으로 가는 날

2019.01 혼자 로마로 향하다 - No.3

로마에서 100시간 정도 보내고 나니, 로마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곳임에도 비수기 특수는 있었다.


로마 중심은 너무나 무심하게 일상과 맞닿아있는 명소들과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혼잡함이 뒤섞여 오묘한 아우라를 뽐냈다. 그 혼선과 달리 관광객의 발길이 적은 로마 곳곳 작은 동네들은 자글자글한 떠들썩함과 표현하기 애매한 묘한 자부심이 섞인 정겨움이 있었다.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작은 카페에 들어가 나이 지긋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내가 로마에서 가장 편하게 쉬었던 시간이었다.

생뚱맞은 동양인이 들어가면 잠시 모두의 시선이 날아와 꽂히곤 했지만, 이내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몰두했다. 로마에서만큼은 소매치기당하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여러 채널을 통해 들어왔지만, 막상 일상을 살고 있는 로마 사람들의 동네는 평온했다.

커피를 마시던 테이블 위에 짐을 그대로 두고 화장실에 잠시 가려고 하면 부탁하기도 전에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자기가 짐을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따뜻한 배려를 해주곤 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날에, 역시나 작은 가게에서 맛있는 카푸치노를 한잔 마시고 2000년을 거슬러 가야 하는 폼페이로 향했다. 폼페이에 대해선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제목에서 본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나폴리와 소렌토를 거쳐 폼페이로 가는 길. 해안도로를 굽이굽이 지나 소렌토의 시원한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은, 베이지색 작은 골목을 지나 처음 마주한 판테온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다.

소렌토의 바다 앞 절벽을 따라 쭉 이어지는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너무나 확실한 여행객인 내 모습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언젠가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하필 소렌토에서 다시 만나는 감정이 될 줄이야.


소렌토에서 다시 2000년을 마저 달려 폼페이 입구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2000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사라졌다가 500년 전에 발굴되기 시작,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인 곳이란다. 이게 말이 되나. 근데 와보니 진짜네.



내가 살다 살다 2000년 전 돌을 다 만져보고 그때의 마을 안을 돌아보고 이럴 수 있다는 건 거의 인테스텔라 아님?!

하늘과 비어있는 폼페이의 조화가 그야말로 경이로워서 당시 구닥다리였던 아이폰6로 엄청 사진을 찍었다. 찍으면 그냥 화보인걸, 뭐. 아, 신나.



나는 이제 신사역사거리에서 집채만 한 호랑이를 만나도 안 놀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저 느낌일 뿐, 강 건너 한남동 블루보틀에 앉아있는 사람도 들을 만큼 소리를 지를 것이 확실)


아래는 당시 돌담에 뚫려있던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고 아이폰(6)에 적었던 메모.




담을 쌓아서 뒷면이 안 보인다. 시간과 자연의 힘인지 누군가의 의지인지 구멍이 있다.

눈높이에 비해 약간 높지만 발뒤꿈치를 드니 얼추 보인다. 더 가까이 다가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틈도 넘어 보이는 광경도 모두 좋다. 볼 의지가 있어야 볼 수 있다.

2000년 전, 단단하게 벽을 쌓은 자는 그 나름의 다른 의도가 있었겠지만.

아니 어쩌면 원래부터 계획된 구멍일 수도.




볼 의지가 있어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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