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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Sep 14. 2020

산책을 하며 그저 휴식을, 뉴욕에서

조용히 걷거나 멍을 때리기에도 완벽한 도시 Newyork

뉴욕에 방문할 때마다 늘 부러운 것이 공원이었다.

스트레스 게이지가 오르면 혼자 걷거나 조용한 곳에서 잠시 멈춰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뉴욕의 공원들은 몹시나 탐이 나는 장소였다.


일 년 전쯤부터 하루에 만보를 걸으려고 노력 중이다. 차를 갖고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3-4000보쯤 걸어놓고 퇴근 후 밤 시간에 부러 시간을 들여 걸어야 만보를 채울 수 있다. 약속이 있는 저녁에 만보를 채우지 못하면, 그만큼의 걸음을 휴일에 벌충한다. 어느 휴일엔 만오천보, 드물게는 이만보 이상을 걸어 가능하면 연평균 걸음 수가 만보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맞추고 있다.


5 Avenue에서 진입, 맨해튼의 폐 @센트럴파크


맨해튼 한가운데-넓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상상했던 그 이상-엄청난 사이즈로 자리 잡고 있는 센트럴파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 마냥 다소 생뚱맞은 통로까지 포함 그야말로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있었다. 24시간(뻥 아님) 내내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뉴욕이지만, 도보 10분 안에 피난처(공원)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도시라니!

 

Prospect Park@Brooklyn


거대한 센트럴 파크 외에도 바로 길 건너 정신이 사납다 못해 전쟁 같은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이 바로 접해있다는 것이 기괴할 정도로 평화로운 공원들이 뉴욕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면 명소나 (여행객들의)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기보다는, 그냥 그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주말 혹은 휴일 일상 비스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동네의 작은 식당에서 (그 동네 사람들에게) 특별할 것 없는 식사를 하고, 동네 마트나 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공원에서 쉬고, 밤에는 작은 술집 혹은 숙소에서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마무리하는 일정이 최고.


Brooklyn Botanic Garden@Prospect Park


센트럴파크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어마어마하게 넓다고 혀를 내둘렀을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공원이 나의 최애 중 한 곳. 센트럴파크에는 중간중간 장사치와 관광객들로 인한 혼잡이 넘실대지만, 프로스펙트 공원엔 평화가 파도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뉴욕 두 번째 여행 혹은 세 번째 여행 중 어느 날, 이곳에 들어가 한 시간 넘게 걷다가 벤치에 잠시 누워 쉬며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아무 생각이 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 너무나 만족스러워 사진을 남겨두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입고 간 옷이 유독 숭해서 볼 때마다 아쉽다는 tmi...


특유의 의자와 테이블 세트@Bryant Park

 

뉴욕 골목, 주로 코너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슈퍼마켓(이라고 하기엔 담배, 커피를 사러 와 간단한 수다를 떨고 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에 들어가 대왕 커피메이커로 내린 1불짜리 블랙커피를 사들고 근처 공원에서 초록초록함을 눈에 담으며 벤치에 앉아 쉴 때가, 정장을 빼입은 능숙한 웨이터가 예약해둔 자리로 안내해주는 고급 식당에 갔을 때보다 더 '나를 대접해주는 여행 중’이라고 느껴졌다는 표현을 어찌하면 좋으려나. 이 문장을 쓰고 2분간 멈춰 생각해보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포기.


내 특정 기분을 설명하기엔 실패했지만, 이 글을 적는 목적은 그것은 아니고.. 너무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로 종종 오해를 받고 있는 뉴욕에 대한 작은 변명을 해주고 싶었을 뿐. 나처럼 ‘도시순이’인 주제에 호적한 곳을 필요로 하는 욕심쟁이에게 뉴욕은 정말 완벽한 도시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헷.



올해는 역병으로 인해 예년에 비해 저녁 약속이 월등히 줄어 오히려 만보 걷기가 수월해졌었는데, 지난 7-8월 징그럽다 못해 무서우리만큼 쏟아진 비로 인해 한 달 정도 주춤했더니만 현재 연평균 도보수가 구천보 밑으로 내려앉아버렸다. 지난주부터 "가을 하늘 공활한데~"가 절로 떠오르는 날씨가 시작되었으니 부지런히 보충을 시작해야겠다.
작년에 이사 온 지금의 동네는 지대가 조금 높은 대신 작은 둘레길들이 나있어서 걷기에 좋은 장소가 근접해있다. 사랑해마지않는 한강 둔치보단 소박하고 앉아서 쉴만한 시설도 부족하긴 하지만, 오다니는 사람이 적고 조용해서 휴식을 겸한 산책로로는 아주 훌륭하다.





지금은 서울에서, 조용히 걷고 있어요
서울도 좋지만..
 또 가고 싶다,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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