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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Oct 13. 2020

와중에 남쪽을 향해 떠났다-1

오랜만의 국내 여행, 첫날

지난 열흘간 내 정신은 작은 파편으로 쪼개져 내 주변을 에워싼 채 공기 중에 동동 떠있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업무가 급작스레 시작되어 ‘이게 맞는 건가? 이건 또 뭐지? 빼먹은 게 없으려나’를 중얼거리며 보냈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찬 보통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낯선 일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겪다 보면 에너지가 쉽게 휘발된다. 생소한 것 까진 아니지만 직접 해본 적 없던 일을 선명한 지시 없이 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피로도가 높았다. 퇴근길 차 안에서부터 집에 들어가 클렌징 워터로 화장을 지우기 전까지, 가장 먼저 노화해버린 눈이 피로함을 쏟아내듯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눈물을 배출했다.


이 시간을 맞이하기 직전, 남쪽 땅으로 3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아마도 이 짧은 여행이 있었기에, 지난 열흘간 별 탈 없이 지내온 것일지도 모른다.


여수바다 뷰가 근사했던 카페

사실 이 여행을 이틀 앞두고 사단이 생겨, 나와 동행인 둘 다 서너 시간도 제대로 못 잔 채 아침 7시도 안된 시간에 서울역에 도착, 몽롱한 채 KTX를 타고 여수를 향했다. 한 칸 비워 앉기 중인 기차 안은 여유로웠지만 하필이면 우리가 탔던 칸과 옆칸의 문이 고장이 나서, 중간중간 내리고 타는 승객들이 끊이지 않고 통로를 지나갔다.


쪽잠도 제대로 못 잔 채 기차에서 내리니 아침 10시. 아침저녁으론 찬기가 제법 돌던 서울과 달리 여수의 날씨는 푹했다. 렌터카를 찾아 오래된 식당에서 고칼로리 식사를 하고, 여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마음에 쏙들었던 호텔 @여수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던 동행인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야 했기에, 나는 홀로 호텔 앞 산책길로 나섰다. 춘추복 차림으로 왔는데 이곳은 아직 하절기, 조용한 산책길에서 입고 있던 집업을 벗어 허리에 묶고 바다를 구경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산책로에는 아무도 없었고 미동조차 없는 것 같은 바다와 하늘을 마주하고 있자니, 현실감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순간 오직 내 감각만 이 세상과 맞닿아있는 듯, 오장육부 곳곳까지 바다내음과 바닷바람을 들이켤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텔 앞 산책로, 그날의 풍경

벗어버린 집업 때문인지, 아무도 없이 깨끗하고 고요한 장소 때문인지. 어땠냐고, 길에서 마주친 누구를 잡고 물어도 푸념 섞인 답이 나올 2020년.. 갑갑함과 불안함이 혼재되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불쾌함이 조금은 그날 풍경 속으로 흘러가버렸다. 이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정신이 준비되었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 호텔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오예’가 나올 정도로 상쾌했다.

가벼운 옷을 입고 돌산도로 향했다. 돌산도 북쪽,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의 카페에 들러 당과 눈요기 충전을 하고 구불구불 바다 뷰가 이어지는 섬 둘레를 돌며 드라이브를 했다. 돌산도는 제법 컸다. 해 질 녘 하늘이 끝내주는 바다 앞에서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취했다.


역시나 미동이 없던 해질녘, 돌산도



시간은 어쨌거나 흐르고 있어
나를 위한 작은 노력을 멈추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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