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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Oct 15. 2020

와중에 남쪽을 향해 떠났다-2

오랜만의 국내 여행, 둘째 날

누군가와 같이 한방에서 자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잠자리가 바뀐 여행 첫날은 늘 피로도와 무관하게 잠을 설치곤 했다.


아침 7시.

눈을 떠서 휴대전화 시계를 확인하는데 몸이 가뿐하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고(경동 양곱창구이 꿀맛!!!) 열 시반쯤 호텔에 들어왔는데, 잠이 부족한 탓인지 속이 불편하고 두통도 있길래 호텔 카운터에서 소화제를 받아먹고 침대에 누운 게 자정 무렵이었다. 여섯 시간 넘게 쭈우욱 잘 자는 일은 평소에도 드문데, 이 호텔 기운이 좋은 것인가.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잡생각을 하다 졸다 하다가, 아홉 시가 다되어 몸을 일으켰다. 일행이 아침 운동하는 동안 인근에 살고 있는 동생을 잠깐 보고 오기로 하고 여천을 향했다. 운전하고 가는 동안 햇살이 뜨끈해서 십 년 전 LA에서 만났던 아침이 생각났다. 아침 6시인데 목 뒤를 때리는 햇볕에 놀라며 호텔 바로 옆에 있던 맥도널드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사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다녀온 그날은 내 인생 중 제일 재밌는 하루 중 하나였다.


이른 아침 여천 카페에서 만난 고양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생한테 뭐라도 사다 주고 싶었는데, 공휴일 아침 시간에 열려있는 곳이 거의 없길래 편의점에 들어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샀다. 동생집 앞에 아이를 안고 나와있는 부부를 만나 아이스크림을 안겨주고 동생만 태워 인근 카페로 가 잠시 밀린 수다를 떨었, 아니 들었다. 카페엔 이쁘장한 고양이 두 마리가 나른하게 손님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호텔에 돌아와 외출 준비를 하고 나니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 어제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어서 첫끼는 산뜻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깔끔한 브런치 카페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구경하며 식사를 하고 하동으로 향했다.


여수에서 하동 가는 길에 광양제철소를 지났다. 예전에 광양제철소의 야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경험이 있었기에, “여긴 밤에 보는 게 찐이다” 일행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날 밤늦게 광양제철소의 야경을 본 일행 역시 2050년 미래도시 같은 그 풍경을 재밌게 구경을 했다)


나@스타웨이하동

회색 배를 땅을 향해 깔고 있는 구름들이 몰려들었다가, 천지창조처럼 햇빛살이 꽂히다 하는 드라마틱한 하늘을 구경하며 하동에 도착했다. 스타웨이로 가는 길부터 이미 멋과 미가 낙엽과 함께 우수수 떨어졌다. 수묵담채화에서 본 것 같은 감나무들이 작은 길목에 옴팡진 열매를 단채 서있고, 작고 큰 차밭이 초록함을 뽐내는 동네라니.


스타웨이에서 넓은 파노라마뷰로 하동을 만나고, 작은 녹차밭이 붙어있는 다원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서부터 화려함이 코끝을 때리는 향이 발하고 있었다. 언젠가 맡아본 향이지만 이만큼 강렬하진 않았다. 너무 강력해서 낯설게 느껴지는 그 힘에 놀라 두리번거리자니, 노상 테이블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알아듣기 쉽지 않은 어투로 “이게 샤넬 향수 원료다”라며 한 나무를 가리킨다.


금목서

오렌지빛 꽃잎과 짙은 녹색잎이 섞여있는 둥근형태의 나무. 만리향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황홀한 향기를 갖고 있으며, 가을-초겨울 사이에 꽃을 피우는 나무로 내한성이 약해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 분포되어있다
만리향에 반하고나면 펼쳐지는 차밭

 차밭에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고 이 다원의 포인트 차밭 배경이 내다보이는 한옥 마루 사진도 야무지게 챙겨 찍었다. 꺄르르 거리며 시종일관 즐거운 스무 살을 갓 넘긴 커플들을 구경하고 나니 미소가 절로 났다.


스타웨이 하동에서 일행이 오만 원 지폐 한 장을 주워서 ‘공돈은 바로 써야 한다’ 국룰을 지키고자 쌍계명차에서 향긋한 차를 몇 개 구매했다. 쌍계명차 옆으론 유명한 벚꽃길이 이어지는데, 꽃잎이 없는 계절이지만 길 자체가 몹시 아름다워 갓길에 차를 대고 잠시 내려 가을이 시작된 길을 걸었다.


6시가 되어 하동에 있는 고즈넉한 식당에 들어가 재첩국과 재첩전을 찬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애정 하는 남해 아난티로 이동했다. 아슬아슬하게 마감시간 전에 도착해서 아난티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고 잘 꾸며놓은 아난티 산책로를 걸으며 소화를 도모했다.   


꽤 늦은 시간이 되어 여수로 돌아오는 길. 매드맥스가 연상되는 광양과 여수 공단의 야경을 보자니, 오늘 하루 들른 장소들의 온도차가 확 강력하게 느껴졌다. 두 시간 안에 이동 가능한 여수, 광양, 하동, 남해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차이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어젯밤 컨디션 난조로 즐기지 못한 맥주를 마시며 이 작은 땅덩이에서만도 이만큼 다양한 문화가 왕왕 보이니,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겠나 싶어 잠깐 쓴웃음이 났다.



여행의 묘미,
쪼매난 나 vs 크디큰 세상
현타를 즐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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