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믹 시대 맞춤 여행
눈을 맞으며 걸어본 게 언제였더라.
어쩔 수 없이 맞게 된 눈 말고, 눈이 오는 것을 알면서 부러 내리는 눈을 즐기며 걷는 것.
근 십 년 안에 있었나, 아니. 20대에 있었던 것도 같고, 십 대엔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엊그제 아침 요즘 여러모로 심란한 친구가 집 앞에 찾아와, 쏟아지는 (첫)눈을 만나러 나섰다. 서달산에 들어서자 온통 하얗다. 부지런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미니 사이즈 눈사람들이 반겨준다.
눈사람 때문인지 한결 동심에 가까워지는 마음이 번지며 스르르륵 평온이 찾아왔다. 머릿속이 들끓던 친구도 시원한 기분이라며 만족해하길래 두 시간 가까이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좋아하는 작은 커피집에 들러 찬 기운을 빼줄 달콤한 바닐라라테를 한잔씩 사들고 나오니 눈이 멈췄다. 또다시 산속으로 올라가 승용사 앞에 섰다. 언제 눈이 왔냐는 듯 깨끗해진 하늘과 공기덕에 좌로는 남산타워가 우로는 롯데월드타워가 선명하게 보인다.
얼음 같은 공기와 파란 하늘을 벗 삼아 가슴 깊이 있던 이야기 중 한 조각을 꺼내 나누고 아직 눈이 남아있는 흙길을 내려와 커피를 한잔씩 더 마시기로 했다.
거리두기 격상으로 테이크아웃만 가능해지고선 처음 들른 집 앞 카페. 애정하는 이곳은 내가 주로 책을 읽거나 랩탑으로 영화를 볼 때 들르던 곳이었다. 제법 넓은 실내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아 왠지 낯섦을 느끼며 카페 사장님과 인사를 나눴다. 자영업자분들을 향한 위로는 이미 동이 나 버린 요즘인지라 그 마음 그대로의 안부만 전하고 커피 두 잔을 사서 나왔다.
눈 덕분에 집 근처에서나마 짧은 여행을 치른 듯, 시간을 확인하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꼭 멀리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었구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