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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Jun 21. 2020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영화 버닝 Burning

종수와 해미, 그리고 벤.

이 세명은 각기 다른 모습의 ‘젊음'이었다.


처음엔 세상의 템포를 따라가고 싶은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느림보였는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종수의 몸놀림이 점점 빨라진다.

나의 젊음의 속도 역시 그랬었다.


순진함과 즉흥성이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그저 지금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한 해미.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오히려 내가 사라지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나의 젊은 날의 불안함도 꽤나 위태로웠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벤.

어쩌면 셋 중에 가장 먼저 본인의 삶을 받아들인 것 같기도, 아예 놓아버린 것도 같다.


버닝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모호하다. 언젠가부터 우후죽순 늘어나 더 이상 그 단어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진 ‘열린 결말’과는 조금 다른 ‘열린 영화’라고 해야 하나. 거의 매 장면마다 미스터리한 요소가 이어져 관람자에 따라 수없이 다르게 읽힐 수 있을 영화였다.


젊음의 여러가지 표정


해미와 벤을 만나 구경하게 된 타인의 공간,

낯섦이 가득하고 혼란스럽지만 하나씩 구경해나가는 재미가 나름 쏠쏠한 종수. 물론, 그랬거나 저랬거나 그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커져만 간다.


해미의 집은 과거와 현재가 무질서하게 켜켜이 쌓여있는 작은 방, 하루에 딱 한번 남산타워에 반사된 햇빛 한 조각이 실내를 밝혀준다.


고급 빌라에 살고 있는 벤은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것이 너무나도 편안해 보인다. 그저 집인데, 뭐. 쿨하다 못해 친절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환대가 종수에겐 묘한 의심을 품게 만든다.


종수의 공간인 파주집 안에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은 '혼란'과 '가난'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 적나라한 공간으로 종수의 속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해미와 벤이 불쑥 찾아온다.


셋의 집은, 모두 그들과 꼭 닮아있었다.


종수는 달린다. 알고싶은 것이 무언지 모른채.


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익숙지 않은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느꼈던 어느 젊은 날 생각이 났다. 관객에게 친절하고자 대부분 집과 거주자의 성격이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와 달리, 그때 내가 알던 그와 그의 집은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낮인데 빛이 없는 (영화 ‘기생충’ 때문에 전 세계에 존재를 알리게 된) 반지하 빌라는 특유의 습함이 있었다. 싱크대에 있던 밀린 설거지거리에 케첩이 번져있던 흰 접시가 시선을 끌었다. 그의 집에 가보고 나서야 나는 그를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까탈스럽고 다소 험상궂어서 그를 아는 사람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가 좋아”하고 밝혔다간 스무고개 같은 질문세례와 함께 의아한 눈초리를 받는 것이 당연할 정도였는데, 그의 집에는 보들보들한 취향으로 고른 것 같은 가구나 소품이 상당수 있었다. 유난스럽던 그의 깔끔함 역시 그저 그의 일부였을 뿐, 느슨한 살림살이도 드물게나마 눈에 띄었다. 욕실과 서랍장, 옷방에 정리되어있는 모습을 보며 미처 몰랐던 그의 일상이 내 머릿속에 새롭게 그려졌다.


집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서로의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 그런 것처럼, 내가 모르던 새로운 모습이 숨어있다가 발견되기도 한다. 종수와 해미, 벤도 서로의 집을 보며 ‘아는 사이’가 되고, 그 과정에서 종수의 머릿속엔 벤을 향한 의심의 불씨가 번지기 시작한다.


‘아는 사이’ 범주안에 들어온 셋


젊음은 갖고 있는 동안, 그 온도가 너무 뜨거워 늘 무언가 조금씩 신경이 쓰였다. 그 뜨거움이 식어가며 나이를 먹고 있던 것인데, 난 온도가 낮아진 초반에 내가 드디어 그 온도에 익숙해졌다고 잠시 착각을 했던 것도 같다.


영화 버닝의 마지막, 휑한 벌판에서 종수가 너무 뜨거워져버린 본인의 온도를 벤에게 넘겨버리고 나서 입고 있던 옷까지 몽땅 벗어던지고난 그때. 그때의 종수와 벤의 표정에 영화 중 거의 유일하게 생기가 엿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듯한 젊음,
미처 다 알지도 못한 채 잃어버리고 말았네




버닝 BURNING, 2018

한국 미스터리

(감독) 이창동

(출연)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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