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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Apr 27. 2020

엘리오의 파란 첫사랑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컬러로 '파란색'을 꼽지는 않았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기 전까진.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 마음의 컬러로, 파란색은 완벽했다. 그 컬러와 짝꿍 같은 음악이 거의 멈추지 않고 영화 내내 흘러나온다. 관람하는 동안 내 기분은 엘리오의 파란 마음 한편에 떠있는 하얀 뭉게구름이 된 듯, 몽실몽실 기분 좋은 간질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반바지 차림이 잘 어울리는 올리버&엘리오


올리버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 엘리오는 그야말로 살구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자고로 '티격태격'이 없는 관계는 설레지 않기에, 툴툴 맞은 둘의 초반 케미가 너무나 이뻤다. 성숙하지 못한 행동들마저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줄 것 같은 햇살이 든든하게 지원해주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금 기준, 내가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길 나의 첫사랑은 W이다. W와 처음 만난 날, 나의 온 신경이 더듬이를 꺼내어 그의 몸 곳곳에 밀착한 듯  함께 있는 내내 그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인한 반응이 내 몸에 짜릿하게 전해졌다.


본인의 마음을 입으로 꺼내기전, 올리버를 관찰하는 엘리오


당시  방엔  전화와 다른 번호의  전화가 있었다.(그땐 휴대전화 통화요금이 비싼 편이라 휴대전화가 있더라도  통화는 공중전화에서  전화로 걸곤 했다-그땐 그랬지1.)

처음   전화로 그에게 전화가 왔던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후 전화기 선을 손가락으로 칭칭 감아대며(  전화기는 ‘당근’ 모양 유선 전화기였다-그땐 그랬지2.) 전화기 선과 비례하도록  몸도 베베 꼬아가며,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서너 시간 동안 통화를 나누기도 했다.


CMBYN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


W와 지속적인 만남을 갖기 시작하며,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와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그저 좋기만 할 것 같은, 스무 살만이 그릴 수 있을 그런 미래를.

그렇게 좋던 그와 왜 헤어졌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관계 종지부처럼 결국 서로의 ‘다름’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속상한 이별은 서로의 ‘다름’이 안타까운 경우였고, 불쾌한 이별은 상대의 ‘다름’이 ‘틀림’으로 결론이 난  경우였다



엘리오의 부모는 그야말로 ‘어른’이었다


침입자 올리버가 떠난 뒤, 엘리오의 아빠가 아들에게 건넨 위로는 (대한민국에선) 감히 상상조차 힘든 성숙하고 따뜻함 가득한 어른/부모로서의 정답 그 자체였다.


“지금의 그 슬픔과 괴로움 부디 오래 간직하렴.

같이 느꼈던 기쁨과 함께.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 서른 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어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당장 아프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하다니, 그건 어리석은 낭비가 아닐까?”



상대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엘리오X올리버


흰 눈이 내리는 날, 올리버의 전화를 받은 엘리오.

전혀 반갑지 않은 뉴스를 전하는 올리버에게 감정을 듬뿍 담아 ‘엘리오’를 몇 차례 부르고 나서야 그의 이름이자 본인의 이름이었던 ‘올리버’를 돌려받는다.

전화를 끊고 눈물을 흘리는 엘리오의 마음에 부디 아빠가 전한 위로가 충분히 작용하기를. 그 여름 파랗던 첫사랑,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W와 헤어진 지 하아아아안참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종종 나의 연애 상대에게 갖다 대는 기준으로 W가 내 마음에 등장하곤 한다.
W가 나에게 특별히 관대했던 것은, 단지 그가 그여서였다기보단 우리가 스무 살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냥 그가 그였기 때문이라고 기억하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 핑계를 대며 가끔 첫사랑을 소환하는 것이다. 소환된 W와 늘 같이 따라오는 그의 체취, 그의 어투, 그날의 빗소리와 습도까지. 그 모든 것이 함께 나의 첫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의 첫사랑 컬러는, 무지개색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2017


멜로/로맨스/드라마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미국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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