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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Apr 26. 2020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영화 윤희에게 Moonlit Winter

2018년 여름 더위를 기억하는지?

5월부터 낌새가 이상하던 그 해 여름 더위는 6월을 지나며 불타오르기 시작하더니 7월에는 단 한순간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선 생활하기 힘들 정도로 고약하게 굴기 시작했다. 고온다습을 힘겨워하는 나는 “이렇겐 못 살겠다”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지금(코로나19 시국) 생각해보니 배부른 투정이었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코로나’라곤 밴드 이름 혹은 맥주 이름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고. 한반도의 유난스러운 더위가 싫었고. 길게 휴가를 내기엔 회사에 일정이 있었고. 휴가를 길게 낼 수 있다한들 멀리 가긴 귀찮았기에. 급히 주말에 휴가를 붙여 5일간 북해도로 여행을 떠났었다.

 일본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북해도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행시간이 3시간이나 걸리는 일본 여행은 초반부터 낯설었는데, 신치토세공항에 내리자마자 열기 없는 온도에 몸도 마음도 들뜨기 시작했다. 아 상쾌해.


호텔 유리로 보이는 나와 삿포로 시내의 초록초록함


삿포로 시내에 들어가 호텔에 짐을 풀고 사우나에 내려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온몸에 밴 것 같은 ‘뜨끈함’을 씻어냈다. 불과 몇 시간 전 서울에서는 반바지도 입기 싫을 정도였는데, 긴 레깅스를 입고 나서도 불쾌함이 없는 기온을 만나니 기운이 차 오르는 것 같았다.


시내에서 만난 현지 거주인에게 북해도의 하얀 겨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단 나름 갬성담긴 고백을 했는데, 북해도의 연간 적설량은 7m 이상이며 11월부터 3월까지 거의 매일 눈이 내린단 심히 슴슴한 답을 받았다. 더불어 삿포로 시내를 제외하곤 쌓인 눈으로 인해 차량 및 대중교통이 마비가 되는 것이 일상이라 겨울에 북해도의 자살률이 높단 어두운 정보마저 알게 되었다. 아, 여름에 오길 잘한 거구나. 긁적긁적.



삭막한 겨울을 가늠할수없는 8월 북해도의 푸르름


오타루로 이동한 건 여행 셋째 날.

이른 아침 오타루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은 한산 했고, 통유리를 통해 북해도의 아름다운 자연이 시원하게 펼쳐져 지루할 틈도 없이 오타루에 도착했다.

 오타루의 첫인상은 삿포로 시내에 비해 조용한 동시에 뭔가 조금 촌스럽고 딱딱해 보인다는 것. 많은 일본 지방 도시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길에 오 다니는 사람들에게 활기찬 에너지가 살짝 부족하다고 해얄까. 길에서 만난 길냥이들 마저 비슷한 활력지수를 보였다. 신기방기.



슬로우템포로 흘러가는 영화 윤희에게


‘윤희에게’를 통해 궁금했던 오타루의 겨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를 통해서 만난 겨울 오타루는 상상했던 것보단 조금 더 에너지가 느껴졌다.


20년 만에 만나는 윤희와 쥰.

여러모로 손상되었을 그녀들의 긴 시간들을, 겨우내 멈추지 않고 내리는 오타루의 눈이 포근하게 덮어주는 것 같았다.


한국영화에선 만나기 힘든 슬로우 템포.

성급히 휘이 저어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조심 들려주는 그들의 겨울 이야기가 흝어지지않고  위로 조금씩 쌓여간다. Moonlit Winter. 영어 제목이 영화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부팅을 하려면 일상의 전원을 내려야한다


윤희의 딸 이름은 ‘새봄’.

딸 이름 같은 내일을 만나기 위해 재부팅을 마친 윤희에게 마음의 응원을 보냈다. 여름 어느 날, 상쾌하고 푸르른 북해도에서 윤희와 쥰이 나란히 기분 좋은 산책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쥰에게, 윤희가




작성일자 2020년 3월 18일



윤희에게 Moonlit Winter, 2019

멜로/로맨스 한국

(감독) 임대형

(출연) 김희애, 김소혜, 나카무라 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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