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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Apr 23. 2020

당신의 '장국영'은 누구인가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나에게도 찬실이처럼 '장국영'같은 존재가 있었다. 비록 딱 한 명은 아니었지만.



양 어깨에 바짝 맨 '호돌이' 배낭 속 호돌이 공책, 호돌이 필통, 호돌이 연필은 필수. 물론, 손에는 '호돌이' 실내화 주머니도 들어야 #인싸 국딩이던 80년대 중반. 남동생의 국민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나는 처음으로 독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러 이유로 한밤중에 잠이 깨면, 한 자릿수 나이였던 나는 무조건 안방으로 달려가 엄마를 깨웠다. 내 방에서 안방까지 어른 걸음으로 여섯 걸음, 아이 걸음으로 열 걸음쯤 되었으려나. 이 짧은 거리를 굳이 뛰어가야 할 만큼 독방의 밤은 꽤나 무서웠다.


"이제 너 혼자 방을 쓸 만큼 커졌으니까, 자다 깨도 엄마한테 바로 오지 말고 무서움을 없애려고 노력해봐야 해.

네가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는 것이 무서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거야."


왼손엔 애착 인형(나의 애착 인형 노란색 곰돌이의 이름은 '맹꽁이'였는데, 도대체 곰돌이한테 왜 그런 이름을 지어줬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을 안고, 오른손은 엄마 손을 꼭 잡고 있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독방 생활을 한지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엄마의 말처럼 무서움을 이기기 위한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깜깜한 방, 어슷한 격자로 만든 옷장 틈새의 그림자, 윗집 혹은 옆집 움직임 때문에 들리는 삐그덕 소리 등등.. 맹꽁이에게만 의지해서 이겨내기엔 무서운 요소가 너무 많았다.


잠이 깨면 무조건 좋아하는 걸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당시 좋아하던 연예인과의 만남을 그려보고, 좋아하던 영화나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재밌었던 순간의 기억을 재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내 상상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생기게 되었다. 바로 나의 첫 '장국영'이라 꼽을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가.

키다리 아저씬 나에게 늘 친절하다. 내가 못난 구석을 내비쳐도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달래주었고, 내일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때론 엄마보다 다정했고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주기도 했다. 난 시나브로 자다가 깼을 때뿐만 아니라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마자 바로 아저씨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중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밤마다 그를 만났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키다리 아저씨 퇴장 이후 다른 '장국영'의 등장까지는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왠지 국민학생같이 천진난만해 보이는 찬실



중학교에 들어가니, 학교 생활은 국민학교 때와 달리 더 이상 녹록지가 않았다. 1학기를 보내며 점점 많은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고 이유를 알기 힘든 예민한 감정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학교에서의 생활이 점차 우스워졌고 집에서는 날카로워졌다. 당연하게 따라나서던 친척집 방문(주로 각종 기념일이었다. 누군가의 생일, 누군가의 결혼, 제사 등등)에 별별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 냉랭한 분위기도 겪게 되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것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음악뿐인 것 같았고 '015B'나 '푸른 하늘', '유재하', '김현식', ‘신해철' 등 가요에 푹 빠져 지냈다. 그중 한 명의 가수(아저씨)가 우리 집 맞은편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하굣길 자주 들른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다. 당시 투병 중인 가수 아저씨의 무거운 컨디션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래도 좋아하는 가수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마주 앉아 먹는 오징어튀김과 떡볶이는 아주 꿀맛이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가수 아저씨의 사망 뉴스를 TV에서 보았다. 그날 오후, 난 처음으로 가수 아저씨 집 앞에 가서 아저씨 집을 한참 보다가 중학생으로선 최선이었던 기도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간은 하고 싶은 말이 생긴 밤이면 난 침대에서 눈을 감고 가수 아저씨를 소환해 몇 차례 대화를 나누었었다. 나의 두 번째 '장국영'은 故김현식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나에게 짧거나 길게 '장국영'의 존재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공백기가 있긴 했지만.

 


지금도 가끔 故김현식의 노래를 들으면, 13세였던 그때의 나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의 프롤로그가 인상 깊었다.


삶의 위기는 늘 느닷없이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미리 알 수 있어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진작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뒤엉켜버린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보지만 가끔은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다. 과연 슬기롭게 헤쳐 나갈 길은 없는 걸까? 다시 용기를 내고, 희망을 꿈꾸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들어도 뭔지 알 수 없는 직업, 영화 PD. 찬실이는 일을 한다는 명목 하에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돌봄을 망각하고 살아왔다.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쉴 틈 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친구 '소피'가 소개해준 프랑스어 강사 '영'.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싸다 바쳐보아도 '누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찬실이가 방치해둔 '찬실'이 놓칠뻔한 것은 찬실의 젊음이었을지도.



찬실의 고백에 아주 등을 돌리진 않지만, 그녀 것이 되어주진 않는 #young



찬실이 영을 마주한 시점부터 바로 그 '장국영'이 등장한다. 현재만의 중요함을 쫓던 아비의 복장을 하고 추운 날씨에도 이곳저곳 가볍게 뛰어다니는 장국영. 찬실에게 계속 "나 좀 봐줄래?"하고 말을 거는 듯한 장국영의 출몰은 찬실이 영에게 반한 그날, 드디어 빛을 발한다.

 장국영은 찬실의 방까지 찾아와 그녀가 잃어버린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그녀에게 지금의 너를 보고, 지금을 즐기고,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는 위로를 온몸으로 표현해준다. 덕분에 찬실은 드디어 제대로 휴식을 해보고, 주변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고, 본인이 원하던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한다.

 


당장 해야 하는 것만 열심히 하며 사는 주인집 할머니




보름달이 떠있는 밤, 차도 못 올라오는 서울 꼭대기에 친구들이 불쑥 놀러 왔는데 찬실의 단칸방 전구는 명을 다해있다. 다 같이 전구를 사러 나가기로 한다. 그들의 발을 손전등으로 비춰주는 찬실이. 그녀의 표정이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공간이 바뀌며, 터널 밖으로 나온 기차가 눈이 쌓인 길을 달리는 스크린이 보이고 장국영이 객석에서 박수를 친다. 나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마지막 영화관 씬은 찬실이의 마음속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현재 장국영은 Mr.Spike


Mr.Spike는 스무 살(내 나이 기준)에 만난 별난 인연인데, 30대 중반 어느 여름날 현실에서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다. 국딩, 중딩 때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네댓 번쯤 마음이 헛헛한 날에 Mr.Spike에게 말을 건네곤 한다.


물리적으로 철저히 혼자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사느라 본인도 모르는 사이 놓아버린 꿈을 가졌던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언젠가부터 헐거워진 나와의 회복이 필요한 우리들에게

과하지 않은 위로를 위트 있게 전해주는 영화 #찬실이는복도 많지


서울 곳곳 애정하는 장소들이 영화에 나와서 즐거움이 더했다. 조만간 성곽길에 들러 나의 장국영에게 말을 건네보아야겠다.




제가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할게요




작성일자 : 2020.04.15



찬실이는 복도 많지 LUCKY CHAN-SIL (2019)

드라마 한국

(감독) 김초희

(출연)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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