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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Feb 03. 2021

이게 순한 맛이라는 거, 알랑가 몰라

영화 세자매 Three Sisters, 2020

3년 전 대한민국 미남계의 황제 정우성 배우가 한 연극을 보고 상당히 큰 금액을 후원했단 소식이 들려왔다. 그 연극은 정미남님 덕에 번듯한 공연장에서 파격적인 운영(좌석이 많지만 회당 40명 내외의 객석만 운영)할 수 있었다. 연극 제목은 ‘모럴패밀리’.


나는 정우성 배우 때문은 아니고, 친한 연극배우 동생의 추천으로 모럴패밀리를 보러 갔다. 동생은 이 공연을 추천하며 나에게 몇 가지에 대한 주의를 강력하게 전해줬는데, 요약하자면 공연이 상당히 ‘쎄다’는 것.


연극은 시작하자마자 웬만한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상황이 벌어지는데, 추천해준 동생의 주의를 받고 예상했던 것보다도 수위가 높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캐릭터들과 상황이 전혀 낯선 것은 아니었다. 분명 서울 어딘가에 있을 법한, 실은 나도 언젠가 목격했던 가족들을 지금 만났더라면 이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오늘, 모럴패밀리의 연출가가 감독을 맡고 그의 부인이자 배우인 김선영이 출연하는 영화 ‘세자매’를 또 만나게 되었다.



세 자매로 나오는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 세명의 배우들. 그녀들의 연기가 훌륭해서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배가 되었다.



아래에 영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폭력을 견디다가 세상 앞에 무릎 꿇어버린 첫째 딸 희숙(김선영)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작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더 큰 상처를 내고 그 고통을 견디는 것에서 유일하게 쾌감을 얻고 산다. 누구에게도 위로를 얻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희숙.


공포를 숨기기 위해 철저히 연기하며 사는 삶을 택한 둘째 딸 미연(문소리)은, 직접 폭력을 당하진 않았지만 어렸을 때 목격한 거짓말 같은 어른들의 모습으로 인해 지금 본인이 하는 연기쯤은 대수롭지 않다. 그저 타인들에게 안정되게 보이는 것에 애를 쓰며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어른이라 생각하는 미연. 9살 때 주님께 아버지를 뺀 나머지 식구들이 모두 죽어 함께 천당에서 살게 해 달라 기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는데, 지금까지도 그 망할 교회와 가족에게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그녀.


대책 없는 막내딸 미옥(장윤주)은 진상인 걸론 어디 가서 꿇리지 않을 인물인데, 사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을 법한 캐릭터이다. 다들 본인이 미옥만큼 진상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들보다 미옥이 정의롭고 순수함을 품고 있으니 그냥 퉁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사람이 술에 의지하면 답이 없다.


누구 하나 멀쩡하지 못한 세자매는, 그녀들을 쪼랩으로 만들어주는 더 환장할 진상 부모를 만나러 오랜만에 고향집에 모인다. 그녀들의 엄마에 대한 서사는 나오는 것이 거의 없지만, 영화 중간 미옥이 "난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으로 미뤄보아 어린 세자매에게 엄마가 부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뻔뻔함과 무지함으로 포장된 부모 앞에서 드디어 솔직함을 드러내는 희숙과 미연. 본인들의 민낯을 내놓고서야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세자매를 싸질러놓기만 한 아버지는 지 대구빡(이라고밖에 표현을 못 하겠다)을 벽에 찧는 주접을 추가로 쌀뿐, 사과 따윈 하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희숙의 딸 보미가 외친 문장은 이 시대의 많은 어른들이 들어야 할 중요한 문장이었다.


왜 어른들은 사과도 제대로 못해?



하지만,

희숙에겐 삶을 견뎌내어야 할 이유인 딸 보미가, 미연에게도 본인의 찐 모습이 나뉘어 담긴 아들과 딸이 있다. 그리고 미옥에겐 착한 남편과 엉망진창인 미옥이 유일하게 잘 보이고 싶은 의붓아들이 있다. 결국 그녀들을 괴롭힌 것도 그녀들을 전진하게 만드는 것도 가족. 그래서 ‘세자매’는 가족으로 남아야 하고 서로를 응원해야만 한다.


세자매에게 상처이자 위로인 바닷가 동네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 30년 만에 처음 셋이 같이 찍는 사진 한 장. 그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순간’의 모습이기 때문. 하지만 우리 모두 어느 순간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영화 마지막에 가수 이소라의 목소리로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가 흘러나온다. 이소라의 회 보랏빛 입자 고운 미스트 같은 음성이, 퍽퍽한 세자매의 오늘에 조금이나마 촉촉함을 전해주는 듯 스며들었다.


영화 얘기 앞에 연극 얘기를 길게 할 수밖에 없던 것은, 이 영화가 연극과 상당히 흡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극에 비해 영화는 순하디 순했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조금 순하게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매워도 순해도 이어져있는 굴레, 가족




세자매 Three Sisters (2020)

한국 드라마

(감독) 이승원

(출연)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 조한철 현봉식 김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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