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총회 이후

by 글도둑

총회 이후, 첫 수업이었다. 나는 몇몇 아는 사람에게만 인사를 꾸벅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몇 명은 인사할 정도로 얼굴을 터서 그런지, 조금은 덜 어색한 것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강의실은 매우 시끄러웠다. 첫 주에는 소곤거리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웃으며 박수까지 치고 소리치며 장난치는 정도랄까. 여자 동기들은 벌써 무척이나 친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빨리 친해지는 걸까 궁금하다.

반면, 수업이 시작하면 어떻게 이리 조용해지는 걸까. 특히 영어로만 대화할 수 있는 글로벌 영어 회화에는 더 심한 것 같았다. 수업이 일찍 끝나자, 강의실에서 혼자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투자했던 회사의 주식이 어떻게 될지, 해외 주식은 언제쯤 팔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사이, 앞쪽에서 떠들던 여자 동기들의 말이 들려왔다.


“아니, 근데 누가 좋다고 2차를 가? 나이도 많으면서 왜 그런데?”


“그래서 어떤 애가 대놓고 싫다고 그랬잖아. 완전 장난 아니던데.”


들으려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딕션 덕분인지, 아니면 참 조용한 강의실에서 활발하게 대화를 해서 그런지, 이야기가 참 잘 들렸다. 내용을 들어보자 하니, 개강총회 이후,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몇 명 있었나 보다. 그리고 어떤 남자 동기가 여자 동기들에게 2차를 제안했으나 대차게 까인 모양이었다.

어딜 가나 남자와 여자가 모이면 이런 일들이 생긴다. 대학교는 특히 더 많겠지. 우리 선배들은 MT도 같다고 했으니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 같다. 동기들끼리도 ‘저녁 한번 먹자, MT도 한번 가자‘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확실하진 않다. 거길 가기 전에 다른 사람들과 좀 친해져야 할 텐데 걱정이 들었다.


강의실에서 잠시 화장실로 가는 도중, 다른 남자 동기를 마주쳐서 말을 걸었다. 밤이 되면 내가 공부하는 건물의 불이 다 꺼져버린다. 안 그래도 잘 모르는 강의실을 찾아서 헤매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여기 복도 너무 어둡지 않아요? 강의실 찾기 엄청 귀찮게 만들어놨는데, 어둡기까지..”


그는 꽤 훤칠하게 생겼는데, 키가 꽤 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학교 다니기 참 힘들다고 했다.


“어둡긴 어둡네요. 불 좀 켜두지. 야간대 학생들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그렇게 대화를 시작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내 고등학교 동창과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참 신기하게도 말이다.

“근데 저는 회사가 수원이고 집이 서울이라 차 타고 다니는데 너무 힘드네요. 그래서 수원에서 아예 자취 시작할까 생각 중이에요.”


자동차에, 자취라. 부럽기만 하다. 난 금전적인 부담이 너무 커서 엄두조차 못 내는 상황인데. 역시 근무 시간도 늘리고, 승진도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되면 대학 다니긴 많이 힘들 텐데. 그와는 아직 꽤나 어색했지만, 그래도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계속 대화하게 됐다. 옆자리가 아니라 앞 뒤로 앉으면서 말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수업도 대부분 겹치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저처럼 월, 화, 수, 목 전부 다 나오시는 거네요?”


“아, 저는 목요일 온라인 강의 신청해서 목요일은 안 나와요.”


“근데, 목요일에 듣는 수업은 1학기에만 신청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내년에 들어보려고요. 아무래도 일주일에 4번이나 나오는 건 힘들 것 같아서요.”


더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강의실에 교수님이 들어왔다. 경제학원론은 예전에 한번 들었던 수업이다. 사내 대학교에서 ‘맨큐의 경제학’을 교재로 들었다. 그때보다는 조금 쉬운 듯한 느낌이다. 아직까지는.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그는 반대쪽이 차가 있다고 인사하며 떠났다.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개강 총회 때 봤던 23살짜리 군인 동기가 차를 세우고, 동기들을 태워주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으로 가세요? 다 타세요! 형, 형도 역으로 가시면 타세요!”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차에 올라탔다. 뒤에는 전부 여자 동기였기에 혼자 앞에 탔는데 꽤나 편했다. 동기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 나도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운전도 아직 잘 못하면서 말이다. 하다못해 카풀이라도 할까. 버스 타고 가면 30분이 넘게 걸리는데, 차를 타고 가면 집까지 10분 거리다. 뚜벅이 인생이 참 불쌍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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