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보강과 스터디

by 글도둑

햇빛이 따가워질 무렵, 기말고사가 다가오며 축제와 공휴일로 잔뜩 빠졌던 수업이 보강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주말 보강으로 말이다. 나는 심지어 1시간이나 일찍 왔다. 동기 중, 나보다 4살이나 어린 동기가 있는데, 수학을 모르겠다며 알려달라고 해서 말이다. 나는 일찍 와서 그놈에게 알려줘야 하는 부분을 다시 복습했다. 수업 시간에는 이해했는데, 막상 다시 풀어보려면 잘 안 되는 게 많으니까 말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강의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다 보니, 20살 때 회사와 대학을 병행하던 기억이 났다. 거제도에서도 동기들이랑 같이 스터디한다고 와서 공부하고, 성적 좋은 동기는 강의도 해주고 그랬는데 말이다. 그때 그 녀석이 수학을 알려줬다. 기초가 없는 내게는 정말 단비처럼 느껴졌다. 물론, 어려웠지만 말이다. 내가 그때 받았던 고마움을 나도 동기에게 주고 싶었다. 능력은 안되지만.


칠판에 서서 분필을 잡았다. 아주 오래전에 잡아봤던 분필. 고등학교 때나 잡아봤던 분필이었다. 손에는 허연 가루가 묻어나고 따딱, 따닥 거리며 이것저것 끄적이다 보면 목이 탁 매이는. 칠판을 분필로 이리저리 그어보며 동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동기는 커피를 사 왔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머금고 꿀꺽 삼키니, 목에 걸린 분필 가루가 쓸려나 내려가는 것 같았다. 커피의 향이 맴도는 강의실에서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배웠던 극한과 미분에 대해서. 그리고 이게 경제학에서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는지, 왜 필요한지 나는 쉽게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내가 부족하다는 게 느껴졌다. 수학 기초가 바닥인 동기에게 알려주기엔, 내가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로. 개념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려면 이 동기에겐 희망이 없다. 아마 중학교 과정부터 다시 배워야 할 거다. 문제 위주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풀린다를 설명하려 애를 쓸 때쯤, 다른 동기들과 함께 교수님이 들오셨다. 나는 칠판을 지우고서 자리에 앉았다. 아, 그때 우리를 위해서, 나를 강의를 해줬던 친구가 정말 힘들었겠구나. 새삼스럽게 그 친구에게 다시 고마웠다.


교수님의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 옆에 있던 여자애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빤 왜 오빠가 일하는 카페 커피를 안 마셔요?”

근처 동기를 보니 다들 내가 일하는 카페의 커피를 들고 있었다. 꽤 비쌀 텐데.

“경쟁사 탐방이야.”


주말 보강이 시작되자, 나는 또다시 거제도가 생각났다. 주말에 공부했던 시절이 그렇게나 까마득한 과거라니. 그동안 참 편히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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