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에 대한 궁금함
영화, '돈'은 상당히 단순한 영화에 속한다. 극 중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결국 그 어려운 단어들로 하는 것은 주가 조작이다. 이런 금융 사기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따라서 주인공, 조일현(류준열)은 가난한 신입사원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금융인으로 변한다.
처음에 순진하던 신입 사원이 변해가는 모습은 겉모습에서 드러난다. 비교적 수수하던 정장이 점점 세련되고 손질된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부자'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 끝에는 번호표(유지태)가 있었다. 변수를 싫어하는 완벽주의 자면서 감정을 배제한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 그는 서서히 번호표에 물들어간다. 번호표가 쓰고 버린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전까지는.
그 뒤로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복잡하지 않게 흘러간다. '월 스트리트'에서는 더 자극적이고 야한 장면이 시선을 끌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배우들의 고군분투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유지태의 연기에서.
기대 없이 본다면, 이 영화는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감이 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일현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본다면, 잡다한 고민이 생길지도 모른다. 만약, '나에게 번호표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 극 중에서 번호표를 뽑고 '떡상'했던 인물들은 전부 '떡락'한다. 조일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누가 번호표를 거부할 수 있을까. 나라면, 주저 없이 번호표를 뽑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혹이 있다. 크고 작음을 떠나서 '돈'을 쉽고 빠르게 벌 수 있는 유혹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 평범하게 벌어서 부자가 되긴 힘들다. 사냥개처럼 우직하게 일해서 돈 벌던 금감원의 한지철(조우진)도 자녀가 태블릿과 태권도 학원에서 고민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면 번호표는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내에서 조일현은 끝까지 번호표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로 등 처먹으려고 달려든다. 그가 싫어하는 '변수'를 찾아내고, 금감원에게 협조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조일현은 이미 돈의 맛에 길들여졌고, 그렇기 때문에 번호표는 그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줄 알았다.'면서 실망한다.
그런 그가 결국 잡혀가며 웃을 때, 궁금증이 생겨났다. 과연, 번호표는 왜 조일현을 죽이지 않았을까. 기회는 충분했을 텐데. 그는 왜 돈을 벌려고 애를 썼을까. 돈이라면 이미 잔뜩 벌었는데도, 자신을 뒤쫓는 사람이,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이 두 가지 궁금증은 '번호표'란 별명에서 답을 찾아봤다. 그는 돈보다는 '권력'을 가진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돈이란 것은 그에게 결국 큰 숫자에 불과했고, 그는 그저 숫자로 놀음을 즐기면서 상대방을 부리고, 굴복시키는 것에 희열을 즐겼다. 변수가 생가면 제거하고, 자신의 숫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맞춘다. 세상이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신이 '번호표'라고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조일현은 그에게 한방 먹였다. 변수를 만들고, 작전을 뒤엎었다. 그런 그에게 번호표는 속삭인다. '살아있어야 다시 보지.' 그는 결국 체포되었지만, 곧 풀려날 것이다. 그에겐 거대한 숫자가 가득하니까. 사냥개가 아무리 달려들어서 물어뜯으려 해도, 그는 입마개를 채울 테니까. 끌려가면서 번호표가 스크린 도어에 비치며 슬며시 웃는다. 영화의 끝에 조일현도 슬며시 웃는다. 번호표는 체포되었고, 조일현은 도망자가 되었다. 조일현은 아마 미국으로 도피를 떠날 것이다. 그곳에서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또다시 비슷한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가 평생 벌 돈을 벌었지만, 돈의 맛을 본 그는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번호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방 먹었지만, 그다음엔 모르는 거니까. 번호표는 재밌어서 웃었을 것이다. 복수의 재미를 위해서 조일현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돈을 다 뺏기 위해서 작전을 짜고 있지 않을까.
번호표를 뽑는다는 것은 '기다린다'라는 의미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기다린다. 번호표는 곧 한 번의 기회이며, 그 기회는 사람마다 쓰기 나름이다. 중요한 것은 번호표를 뽑을 기회가 와야 한다는 사실과 그 기회를 살리는 방법이다. 우리의 삶에 번호표를 뽑을 기회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번호표가 주어지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 머리에서는 그런 생각만 웅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