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프롬 홈, 어린 스파이디의 분투
1. 책임감은 토니 스타크와 전혀 관련 없는 단어였다. 토니가 아이언맨이 되었을 때, 책임감이란 단어는 토니의 심장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그는 책임을 지는 사내였고, 소멸되기 직전 가장 밝은 빛을 내뿜는 별처럼 아름답게 저물었다. 그가 가장 아끼던 한 소년에게 그의 유품이 전해진다. 그의 책임감 또한, 함께.
스파이더맨을 관통하는 가장 큰 철학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의미였다. 우리의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이젠 '다정한 이웃'을 벗어나, 커다란 우주에서 지구를 지키는 '어벤져'가 되어버렸다. 피터는 당황한다. 그가 가진 능력과 책임감은 고작 뉴욕의 한 부분을 지킬 뿐이었으니까. 방황하면서도 고등학교 생활을 즐기던 파커의 모습에서 평범한 학생이 보였다. 어린 소년에게 막대한 짐을 얹어주자, 그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친다.
책임감은 어린 스파이디를 무너트렸다. 자신은 능력이 없다면서, 아직은 준비가 안됬다면서 거절하고, 도망치는 피터에게 등 뒤의 아이언 맨은 너무나 찬란하고, 거대하기만 하다. 크나큰 족적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린, 멘토이자, 후원자였던 스타크는 이제 없다. 그가 남긴 막대한 유산과 책임감만 남아있을 뿐.
그런 책임감에서 피터를 스파이더맨으로 각성하게 한 것은 '분노'였다. 속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토니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서 그는 깨닫는다. 내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 토니의 유산이 그릇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구나. 내가 해야 하는구나. 피터는 그 순간 깨닫는다. 적과 싸울 방법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이.
2.
영화에서 책임감은 피터를 무너트리고, 분노와 죄책감은 스파이디를 각성시킨다. 자책하는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무기는 '스파이더 센스'였다. 스파이더맨이 강한 이유는 일종의 예지에 가까운 그의 감각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공격이 어디서 어떻게 다가오는지 판별하게 해주는 그의 능력은 신기에 가깝다. 어린 스파이디는 아직 자신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런 그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때는 죄책감을 가질 때였다.
홈커밍에서 스파이디는 건물에 깔리고서 물속에 비친 자신을 본다. 그리곤 토니의 말을 떠올린다. '슈트 없이 아무것도 아니면 안 된다.' 스파이디는 자신의 죄책감 속에서 깨닫는다. 토니가 옳았구나. 파 프롬 홈에서도 마찬가지다.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토니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다시 토니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과 분노는 그의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영화 후반부, 화려한 전투 장면에서 그의 감각은 빛을 발한다. 스파이디가 왜 강한지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누군가는 아이언 맨의 후속작처럼 보여서 이번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어색하다고 한다. 하지만, 스파이더 맨 고유의 능력을 보여주는 방법과 피터가 점차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피터는 한층 더 성장한다. 능력을 마음껏 쓰고, 자신이 누군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3.
후속 편을 위한 떡밥은 잘 깔렸다. 어떻게 회수하는지에 따라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가 더 오래갈지, 여기서 끝낼지 결정될 듯싶다. 코믹스에서는'시빌 워' 때 한번,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 맨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그 뒤로 험난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누군가에 의해서 폭로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과연,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