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이야기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결혼에 대해서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책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서 쌓은 간접 경험 덕분에 결혼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것인지는 얼핏 알고 있다 생각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경험한 행복은 벼랑 끝의 줄타기 같았다. 위태롭게 행복한 결혼 생활이랄까.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된다. 나는 이 말을 믿었다. 아무리 깊은 관계라도 헤어지면 끝이고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정서와 다르게 미국은 이혼하더라도 친근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정확히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봤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 정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나에게는 어렵게 다가왔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이혼과 양육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내가 뭘 알겠는가. 그들이 결혼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막바지로 치달을 때, 과연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결정 내릴 수가 없었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영화는 내게 더 어렵게 다가왔다. 내가 과연 이들의 심정을 제대로 공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영화는 나에게 흥미로운 생각을 던져주었다. 때로는 사랑에 감춰진 것이 사랑을 깨부순다는 생각이다.
찰리가 니콜을 떠올리며 썼던 내용과 니콜이 찰리를 떠올리며 썼던 내용은 영화 도입부에서 잔잔하게 읽어준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도.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아서 법정에 섰던 게 아니다.
그들의 사랑 속에서 가려진 이면을 보여주는 건 그들의 변호사였다. 사랑했기에 차마 못했던 말을 해준 것도 변호사였다. 그들의 변호사는 자신의 고객을 위해서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박아놓고 비틀어댄다. 깊은 곳에 숨어있던 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서로에게 전해지는 곳은 법정이었다. 재산과 양육권을 위해서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서로 말은 주고받는다. 결별에 대해 상의하는 장면들 속에서 그들은 상황과 조건을 이야기한다. 그뿐이다. 그들은 결코 서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한 편의 글이 되었지만 제대로 닿았을 땐, 결혼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떨어진 이후였다.
대화가 없었다. 니콜은 찰리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자신을 잃어갔고, 찰리는 극단과 예술, 그리고 자신만의 독선에서 니콜을 잃어갔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대화하진 않았다. 서로가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니콜에게는 찰리가 1순위였다. 가족과 행복이 1순위. 찰리에겐 극단과 예술이 1순위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기 자신이 1순위였다. 그 차이는 서로를 법정에 세웠다.
니콜과 찰리가 서로의 생각에 대해서 털어놓았다면, 상담사의 의견에 자신이 사랑했던 서로의 장점을 읽어주었다면 결말을 바뀌었을까. 진정한 의미의 대화를 시작하고 변호사보다 부드러운 말로 서로를 고쳤을까.
결혼의 끄트머리에서 니콜이 자신의 삶을 되찾는 동안, 찰리는 자신의 독선을 버린다. '결혼 이야기'는 그렇게 서로를 배려해주지만 달라진 삶 속에서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