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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분자

드라마, 스토브 리그의 권경민

by 글도둑

스토브 리그의 메인 빌런, 권경민은 작가가 공들여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드라마의 끝자락에 와 닿은 지금 권경민은 해체를 발표하고, 백승수는 매각을 추진하려 애를 쓴다. 권경민이 드림즈의 사장으로 좌천된 이후, 그의 자줏빛 정장은 회색과 검은색의 정장으로 변했다.


드라마 내내, 백승수 단장은 직장에서 어두운 무채색 계열의 옷만 입는다. 이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보여준다. 냉철한 이성으로 일하면서 휴머니스트와 일하지 않는다는 백승수 단장. 과거의 그는 우승을 위해서 다양한 장애물에 부딧쳤고 그로 인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봤다. 그 결과, 그는 어두운 무채색의 정장만 입으며 주변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직장 동료로 얽혀있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다 외우고 다녔을 정도로 거리를 두었다.


그런 그가 드림즈에서 스토브 리그를 겪으면서 점차 마음을 열었다. 물론, 여전히 단벌신사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옷이 담긴 상징이다. 백승수 단장은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열정을 불태우기보다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다. 친분과 유대감이 약점이 되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데 전념한다. 그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기에 성공하겠다는 어설픈 야망보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움직인다. 잘리더라도 그다음을 위한 포석을 준비하는 것이 백승수다.


반면, 구단주 사장으로 좌천된 권경민은 회색분자다. 드림즈가 줬던 추억을 고이 간직하면서도 해체를 위해 일한다.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드림즈, 아버지를 서민으로 돌아가게 만든 드림즈, 내가 시도했을 땐 변하지 않았던 드림즈, 나를 좌천시킨 드림즈, 다시 본사로 돌아가기 위한 제물, 드림즈. 권경민은 결국 어릴 적 품었던 애정을 낡고 빛바래진 야구공처럼 버린다. 버린 감정을 줍지 않기 위해 쓰레기통도 일찌감치 비워버린다.


백승수 단장과는 반대로 권경민 사장에겐 신념 대신 야망이 있다. 그는 신념을 혐오하며 신념이 굽혀지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그의 야망은 성공이다. 성공을 위해서 그는 야구에 품었던 애정 와 열정을 버린다. 재송 그룹 회장은 '권경민이'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늘 져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술에 취한 채, 팔씨름에 이기고 줘팼던 그 대상에게 권경민은 평생 져줘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다.


15회의 마지막 장면, 서로 마주한 백승수 단장과 권경민 사장의 대화는 독특했다. 비슷한 옷을 입고 서로에게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 똑같은 어두운 무채색 계열의 정장을 입고 지나치지만, 살짝 튀는 차이점 하나가 클로즈 업 된다.


구두.png 자줏빛 구두

자주색은 권경민에게 고독과 우울, 그리고 열정의 색상이다. 초반부 화려한 붉은색은 자주색을 거쳐서 회색과 검은색으로 자리 잡았다. 재벌가에 태어났으나 서민으로 자란 회색분자, 권경민. 그에게 남은 한 켤래의 자줏빛 구두. 그 구두로 사랑했던 드림즈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 해체 발표를 위한 발걸음을 옮긴다. 한벌의 정장이 그동안 벌어졌던 사건의 결과물이라면, 한 켤래의 구두는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지향점이 아닐까.


드라마, 스토브 리그는 마지막 화만을 남겨두고 있다. 권경민의 정장 색상이 바뀐 것처럼, 그동안 해왔던 일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의 마지막 발걸음 또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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