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태양을 피하는 방법

영화, 버드 박스

by 글도둑

넷플릭스에서 열심히 광고를 때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눈가리개를 착용한 사람들. 그들이 대체 왜 눈을 가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호기심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고 버드 박스 세계관 속으로 나를 집어넣었다.


영화는 시간 때우기로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메시지를 주거나 상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주진 않는다. 세계관 설정은 생각보다 빈약한 부분이 강하며 결말 또한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다. 오히려 안갯속에서 살아남는 영화 '미스트'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인공의 가치관과 배경 설명을 따로 하지 않는 부분은 빠른 전개에 큰 도움이 되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흘러가는 스토리는 흥미로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주인공과 그 일행은 한 건물에 갇혀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겪는다. 그 갈등은 생각보다 무심하게 흘러가고 서로를 이해시키려는 노력보다 무시와 무관심 속에서 일행은 와해된다. 인물들의 갈등, 특히 총구까지 겨눠가며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의견을 제대로 나누기는커녕, '그래, 홧김에 총구 좀 겨눌 수 있지.' 하는 생각으로 넘어간다.


일행이 와해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미지의 존재들, 쳐다보면 안 되는 존재들을 마주하고 대책을 세운다. 미지의 존재들, 악마 또는 악령으로 비치나 사실 영화 속 그들은 코즈믹 호러의 세계관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우주적인 존재들로 러브 크래트프의 소설에 처음 등장했다. 크툴루 신화로 알려진 내용들인데, 평범한 인간은 그들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미쳐버린다는 설정이다.


문제는 그 세계관을 어설프게 차용하면서 오는 부조화다. 코즈믹 호러의 세계관에서 그들은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는데, 영화 버드 박스에서는 어설픈 악마 또는 악령으로 비친다. 약간의 물리력과 정신적인 세뇌가 그들이 능력인 반면,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인류를 습격했고 자살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묘사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스토리가 결국 일차원적인 구성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우리는 결국 영화의 결말이 미지의 존재와 그들에게 세뇌된 사이코들을 피해서 도망하고, 도피처를 찾게 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영화의 제목, '버드 박스'는 새들이 미지의 존재와 사이코들의 접근을 알려주는 일종의 감지기 역할을 하게 된다. 새들은 주인공 일행이 살아남는데 도움을 주지만 다른 동물들이 아닌 '새'여야 하는 이유가 빠져있다.


이 작품을 이끄는 가장 큰 요소는 '시각'이다. 눈으로 목격하면 안 되는 미지의 존재를 피해서 살아남는 것이 이 영화의 전부인데, 새는 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동물이 지능이 낮아서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은 왜 등장하지 않았는가. 주인공 일행이 환청도 듣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면서도 장님은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는 것으로 비친다. 작품의 설정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동물들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했다면, 미지의 존재를 확실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월드 워 z'의 바이러스처럼 기존의 흔한 살아남아서 피난처로 가는 것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그나마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시각을 대신하여 소리로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모습과 다양한 도구를 통해서 길을 찾아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낚싯대의 릴과 밧줄을 비롯한 기다란 끈으로 길을 만들어 내는 모습과 내비게이션을 통해 마트를 찾아가는 부분은 괜찮았다. 그 부분과 적당한 공포, 스릴이 이 영화의 전부다.


꿈도 희망도 없는 영화 속 세계관에서 메시지조차 없는 영화,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나름 괜찮아 보이는 영화, 버드 박스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괜찮은 세계관, 안 괜찮은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