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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May 19. 2020

커피팔이 소년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수정1)

 어쩌면 이제는 커피팔이 소년이 아니라 청년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나는 어쩌다 커피팔이 청년이 되었을까. 우습게도 그 이유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나에게 책이란 도피처였다.


 어릴 적, 부모님의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서였다. 컴퓨터 게임 대신 부모님께서 사 오신 책을 읽으며 방을 뒹굴거렸다. 게임은 그만하라고 야단을 치셨지만 책을 읽을 땐 별말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세 똑바로 하고 읽으라고 말씀하셨다. 공부할 시간에 공부는 싫었다. 그 덕분에 남는 시간에는 심심했으니 결국 책이 내 유일한 도피처가 될 수밖에.


 책 속으로 도망치는 것은 학교를 넘어 군대와 회사까지 이어졌다. 군인 시절, 온갖 부조리와 가혹한 자연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나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준 것은 책이었다. 생활관에서 티브이를 보는 것조차 눈치 봤던 시절엔 병영 도서관이 안식처가 되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거나 게임을 하진 못하더라도 책은 읽을 수는 있구나.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회사에 처음 취직해, 혼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도 책은 늘 내 옆에 있었다. 회사 기숙사 근처엔 시립 도서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주말을 소비했다. 일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도, 불안한 감정도 그곳에서 다독였다. 그러던 중, 회사의 비리와 불황으로 내 일상이 위태로워졌을 때 어떤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배우 짐 캐리의 졸업연설 영상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

때문에 기왕이면 사랑하는 일에 도전해보는 것이 낫다."]


 그 순간 책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이런 책을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욕심의 첫 발자국은 일기와 서평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서평을 공유하며 내가 읽은 책들이 단순히 재미와 시간 때우기로 지나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 하고 싶다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러나 글을 팔아서 먹고사는 글쟁이가 되기엔 필력이 너무나 부족했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서 배우자니 너무 늦은 것처럼 느껴졌다. 책과 글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내가 늘 가서 책을 읽던 카페가 생각났다. 북카페를 차리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책에 둘러싸여서 커피와 책을 팔고, 결국에는 내 글까지 팔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배우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커피의 세계는 보다 복잡했으며 그저 여유롭게 보이던 바리스타의 일상은 고된 노동의 여연속이였다. 카페에서 일을 시작하자, 정작 책과 글이 뒷전이 되어버렸다. 힘겨운 일상에 지쳐서 내가 사랑하는 일은 뒤처졌다.


 이에 독서 모임을 만들고 대학교도 갔다. 낮에는 일을 하고 월요일 저녁에는 독서 모임을 운영했다. 저녁에는 야간 대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학교를 가기 전에 책을 읽었다. 읽었던 책을 모임 사람들과 공유하고 서평까지 쓰니 보다 즐겁게 책을 읽게 됐다. 좋은 책은 즐거운 마음으로 공유하고 마음에 안 드는 책은 신랄하게 깎아내리며 모임을 이어나갔다. 


 바리스타로 커피를 팔면서, 학생으로 공부를 하면서, 모임장으로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다채로운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다. 한 편의 글감으로 경험을 뱉어 낸 뒤, 다시 읽어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글은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은 말을 옮겼다면, 지금은 차분하게 곱씹어서 눌러 담았다.


 처음 퇴사할 때 카페를 차리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4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카페 창업의 꿈은 삶의 목표로 육박해온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카페 차릴 거다.'라고 다 말해놓아서 도망칠 수도 없다. 흔들림 속에서도 나만의 카페를 차린다는 목표는 여전하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던 소년은 커피팔이 청년이 되었다. 이 청년은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글쟁이 노년이 되어 글이 팔리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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