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해

영스

by 글도둑

사랑은 인류의 시작과 꾸준히 함께하는 감정이며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감정이다. 우리는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거나 애착하는 등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또한, 상대의 마음을 읽고 상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여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한다. 이러한 행동으로 보아 우리는 상대방을 위해 내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확장으로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남녀의 사랑뿐만 아니라 나이, 국적,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나아가 성 소수자들의 사랑도 더는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이런 모든 사랑에 포함되어 있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것은 장애인의 사랑이다.


장애인의 사랑을 생각하기에 앞서, 내게 장애인이란 단어는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뜻한다. 나는 인생의 구할(九割) 이상을 비장애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장애인의 사랑을 생각해본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장애인을 마주할 때면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장애가 생기거나 혹은 내 주변인이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에 나는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먼저, 내가 장애가 생기는 경우에 어떠할 것인가. 장애는 그저 내 생활에 불편을 주는 하나의 요소일 뿐 불행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또한 불편이냐 불행이냐 결정짓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잣대일 뿐, 내가 불행하지 않다면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때,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누군가와 행복을 나누고 나아가, 사랑 또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이 나눔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사랑이다. 따라서, 나는 사랑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다음으로, 내 주변인이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에는 어떠할 것인가. 이러한 경우는 보통 내가 상대방의 간병인이 되어주는 상황이며 더 많은 에너지를 상대에게 쏟게 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한쪽으로 에너지가 치우친다고 하여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 또한 치우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누군가를 도울 때, 생기가 돌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사랑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



이렇게 두 가지의 경우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사랑을 방해받는 영화도 있듯이 그 상황은 천차만별이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사랑 또한 잃지 않아야 한다. 즉, 어느 상황이 닥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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