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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不殺)이 옳은가

게임, 스파이더맨을 하다가

by 글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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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에게 처맞는다. 다른 표현이 없다. 처맞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이들을 각각 상대해서 감옥에 넣었다. 그는 범죄자를 제압하는 데 있어서 폭력은 쓰지만 살인은 저지르진 않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며 오히려 악당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면 살리려 노력한다. 그는 악당이 얼마나 많은 목숨을 빼앗았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스파이더맨은 사람은 변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와 함께 범죄자는 재판을 받아야 하고 감옥에 갇혀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믿는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접한 게임 속에서도 스파이더맨은 그랬다. 자신이 집어넣은 악당들이 탈옥하여 자신을 두들겨도 그는 그들의 목숨을 노리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다시 감옥으로 보낼지만 고민한다. 반면,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들고 있던 패드를 집어던질 정도로 짜증이 난다. 열심히 공략해서 기껏 잡아놨더니 풀려나서 또 싸워야 한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니라 6명이나 된다. 스파이더맨의 큰 힘이 플레이어의 짜증을 책임지는 순간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데어데블 시즌 2의 3화 '두 남자의 정의'에서 주인공 데어데블과 퍼니셔가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퍼니셔는 이런 말을 한다.


"놀이터인 양, 휘젓고 다니며 깡패들 패주면 다야? 그놈들 감옥에 처넣고 영웅 대접받으니 좋나?

그놈들은 한 달, 일주일, 하루 만에 다시 거리로 나와 똑같은 짓을 하게 돼있어!"


모든 불살 주의 영웅들의 신념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대사. 이 말처럼 스파이더맨은 거리로 나온 악당들에게 무참히 짓밟힌다. 불살의 신념이 과연 옳은 것일까. 풀려나는 범죄자와 끝없는 싸움을 반복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들이 난동 부리면서 도시에 퍼지는 피해는 게임 속, 조나 제임스의 라디오에서도 들을 수 있다. 끊임없는 범죄자들의 싸움은 평화로운 뉴욕이 아니라 범죄의 도시를 만들고 있다. 스파이더맨은 그런 말을 들으며 자책하면서도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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