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자 저주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by 글도둑

Whatever life holds in store for me, I will never forget these words: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This is my gift, my curse. Who am I? I'm Spider-man.


영화 스파이더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 파커는 떠올린다. 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말은 내게 축복이자 저주라고. 돌연변이 거미에게 물려서 초인적인 능력을 얻은 그는 힘에 맞는 책임도 얻었다. 그 힘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을 위험에 빠드리기에 그의 힘은 저주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삼촌 벤 파커의 말은 피터 파커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이다.


평범한 나에게도 축복이자 저주가 있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이다. 초능력을 가진 스파이더맨과는 다르게 나는 평범하게 때문에 열등감이 가득했다. 어릴 적부터 열등감은 나와 함께 성장했다. 초등학생 시절엔 키 순서대로 줄을 세웠다. 나는 언제나 맨 앞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위치에 자리했다. 주변의 친구들이 방학이 지나고 쑥쑥 커서 저 멀리 떨어질 무렵에도 나는 늘 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키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자랐다. 어느덧 성장이 멈췄을 무렵 나는 평균보다 살짝 밑에 있는 숫자를 나의 키로 가지게 되었다.


신체적인 열등감이 나를 내리누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키로 인한 불편함을 마주하기 시작할 때 열등감이 서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평균보다 작은 키는 일상에서 은근히 불편한 점을 마주하게 한다. 높은 위치의 물건을 꺼내기 위해 나보다 큰 사람의 손을 빌릴 때,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서 시야가 가려져 답답할 때, 바지가 길어 기장을 줄여야 할 때. 그런 일상들은 내가 키가 작다며 놀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열등감이 나에겐 축복처럼 다가오는 때가 있다.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때다.


나를 짓누르는 열등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꾸준히 무언가 해야 했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싫어서 운동을 시작했다. 헬스장에 꾸준히 출석 도장을 찍으면서 구슬땀을 흘렸다. 키는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근육은 가능했다. 노력할수록 뱃살은 줄고 근육은 붙었다. 근육 덕분에 체격이 커지자 키가 작다는 느낌과 함께 열등감이 살짝 줄기 시작했다. 열등감이 느껴질수록 운동에 열을 올렸고 열등감이 사그라들 때쯤엔 튼실한 근육이 자리 잡았다. 나를 덮친 열등감을 노력으로 들어 올려 나를 구할 때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그런 성취감 뒤에서 또 다른 열등감은 조용히 나를 덮쳐왔다.


나에겐 없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일 때가 있다. 유난히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그 순간 말이다. 아르바이트로 경기 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가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 취직했다. 대학에 대한 로망이 생겨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직장 동료가 어디 대학을 나왔는지 물어보거나 대학 캠퍼스를 주제로 대화할 때 나는 소외감을 느꼈다. 이후 퇴사하고 집에 올라오며 처음 든 생각도 대학이었지만 시기가 맞지 않아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 당시 일했던 곳은 우연히도 모두가 석사 또는 박사였던 경기 연구원이었다.


내가 맡았던 일은 연구원에서 진행하는 공모전 신청을 메일로 받아서 정리하는 것이었다. 바빠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한가롭게 메일만 기다리던 내가 비교됐다. 연구원들은 나를 신경 쓰지도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잠깐 같이 일하는 사람만큼의 대우를 해줬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연구를 위한 출장, 논문, 학교, 교수와도 같은 단어를 들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대화였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먹어치우며 열등감은 다시 자라났다.


열등감을 죽이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조선소에서 재직 증명서를 받았다. 고졸 취직자 전형으로 원서를 제출하며 무엇을 위해 대학을 가는지 목표를 고민했다. 막연하게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대학생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강의를 듣고, 학식을 먹고, 동아리에서 MT를 가고, 축제를 구경하고. 캠퍼스에서 보이는 활동은 모두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봤다. 동기들과 강의를 듣고 놀러도 갔다. 축제도 가보고 동아리도 들었다. 기대 이하의 강의와 기대 이상의 축제를 보면서 열등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열등감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열등감은 나를 괴롭히는 저주이자 나를 달리게 하는 축복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몸부림칠 때면 나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곤 한다. 열등감에 짓눌려 그곳이 고통스러운 저주처럼 느껴지는 시기엔 스스로를 원망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질문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런 시기를 거치다 보면 이대로 열등감에게 지기 싫다는 오기가 치밀어 오른다. 열등감이 원동력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나다움'은 열등감에서 온다. 내가 나로서 자라오는 동안 열등감은 언제나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했다. 항상 열등감은 내 마음을 지배하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열등감에게 지는 순간 '나다움'은 패배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등감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순간에 '나다움'은 무엇보다 멋진 성취감이 된다. 열등감과 성취감, 평범한 나에게 주어진 저주이자 축복이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이 저주이자 축복이 나를 초인으로 만들어 주는 순간까지 기꺼이 시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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