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깔려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더 듣고 싶다는 설렘이 오선지 위를 까마귀처럼 빙글빙글 맴돈다.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살기 위해 달리는 꿈을 꾼 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이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음악 시간에서 어떤 가곡을 듣고 난 이후였다. 음악에 하나도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당연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인 줄 알았다. 집에서 듣는 음악이라곤 오래된 고물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게 전부였고 그나마도 집안일 할 때만 들었다. 수학과 영어 학원에 다니느라 정신없는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음악 수업은 결국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근데 그 곡을 들으면서 잠에 빠졌을 땐 처음으로 낯선 공간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낯선 공간에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새하얀 공간에서 음표처럼 생긴 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돌덩이에 닿은 부분은 사라졌다. 몸이 사라져 갈수록 움직이긴 더 힘들었다. 처음으로 음악에게 공포를 느꼈다. 뒤에 누군가 쫓아오는 듯한 피아노 선율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빠르지만 안정적이게 나를 보듬어주는 선율과 무섭게 달려오는 또 다른 선율이 교차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돌덩이를 피하다 결국 넘어졌고 돌덩이에 깔리면서 결국 꿈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었을 땐 음악 선생님이 무서운 얼굴로 단소를 손에 탁탁 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 교무실에서 꾸중을 들을 때도 나는 여전히 그 꿈을 떠올렸다. 마치 친구들이 하던 음악 리듬 게임 같았다. 박자에 맞춰서 키를 눌러야 하는 게임. 그 날부터 나는 잠에 빠질 때면 이상한 꿈을 꿨다. 꿈 치고는 생생하게 기억나서 다른 세계에 온 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다. 이런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는 피곤해서 그럴 거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이 괴상한 꿈은 대체 뭘까.
학교와 학원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방에 불을 켠다. 텅 빈 방 안에는 책상과 의자 하나, 그리고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교복을 벗어서 의자에 잔뜩 쌓아두고서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대체 무슨 곡이 나올까. 무서운 가곡을 꿈으로 접한 이후 다양한 클래식을 들었다. 가급적이면 조용하고 느린 곡 위주로. 신기하게도 내가 현실에서 들었던 곡을 토대로 꿈이 만들어졌다. 다만 오늘 들었던 곡이 오늘 나오진 않았다. 마치 랜덤 재생 기능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부디 느린 템포 기를 바라면서 침대에서 꿈을 기다렸다. 돌덩이에 깔려서 깨고 나면 늘 제대로 잔 것 같지 않았다. 피곤함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덕분에 꿈은 금방 찾아왔다.
새하얀 공간에서 나 혼자 덩그러니 있다. 늘 같은 패턴이다. 곧이어 피아노가 떨어진다. 쿵하는 묵직한 소리가 나진 않는다. 부드럽게 떨어진 피아노는 혼자 덮개를 딸깍 하고 열더니 건반이 춤추기 시작한다. 발 밑에서 검은 줄이 5갈래 뻗어져 나간다. 검은 줄에서 낮은 담벼락이 자라난다. 이 담벼락을 잘 넘어 다니며 피해야 한다. 음표 돌덩이는 담벼락을 부수면서 자리 잡는다. 아름답지만 나에겐 무서운 음을 내면서.
3/4. 피아노 다음엔 박자가 떨어진다. 이제 시작이다. 긴장과 설렘이 살짝 뒤섞인다. 두려움은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다. 저 돌덩이에 스칠 때마다 요동치는 두려움이 수면으로 나오려면 한참 멀었다. 이번엔 기필코 이 꿈에서 탈출해서 푹 자고 싶다.
따 단
한 번에 두 개의 돌덩이가 떨어진다. 돌덩이는 늘 내 머리 위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미끄러진다. 하나의 돌덩이를 나는 두 번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약간의 시간차는 있지만 말이다. 이번 곡은 느린 편이다. 느리지만 편안한 분위기의 곡이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돌덩이에 무심코 멍하니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화들짝 놀라서 몸을 던졌다.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했다. 느린 곡들은 이런 방식으로 나를 놀렸다. 갑자기 속도를 올리거나 방심을 유도한다. 대체 나를 왜 괴롭히는 걸까.
느긋한 피아노 선율을 따라가며 발을 재빨리 놀렸다. 처음 떨어진 피아노는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다. 돌덩이가 떨어지는 소리에만 집중했다. 이번 곡은 이상하게 잔잔했다. 그동안 경험했던 곡들은 감정을 자극했다. 슬픔이나 기쁨, 또는 무서움과 두려움 같은 감정을 던져줬다. 그러나 이번 곡은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나를 느슨하게 만들려는지 느긋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반복됐다. 어느새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 꿈이 언제 끝날까. 이 꿈이 끝나면 나는 편하게 잘 수 있을 까. 다시는 이런 꿈을 꾸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또다시 이런 꿈을 꾸게 될까. 요즘 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공부하다가 조는 일이 생기는데 성적이 떨어지진 않을까. 목표로 했던 대학을 못 가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럼 큰일인데.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옆으로 미끄러지던 돌덩이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돌덩이는 낮은 담벼락을 부수고 멈춰있었다. 왼팔이 허전했다. 고통은 없다. 다만 왼팔이 지워져서 몸의 균형이 안 맞을 뿐이다. 음악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생각에 너무 빠져있던 나머지 돌덩이를 깜빡했다. 여기는 꿈속이었지. 뒤뚱거리며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돌덩이를 피한다. 칠흑처럼 검은 돌덩이가 나에게 닿을 때마다 나의 몸은 꿈속에서 지워진다. 내가 다 지워졌을 때는 꿈에서 쫓겨난다.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눈을 뜨겠지. 이번엔 반드시 탈출하겠다는 다짐은 느슨하고 편안한 선율에 밀려 떠내려갔다. 하늘에서 돌덩이가 떨어져도 그게 당연한 것처럼 만들어주는 피아노 소리에 문득 소름이 끼쳤다.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이 무섭게 다가온다.
첫 번째 들었던 곡은 나를 쫓아와서 죽일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무섭다. 어둡고 음산하거나 누군가가 쫓아오는 느낌이 아니라 깨끗하고 밝지만 지나치게 안정된 느낌이다. 돌덩이와 돌덩이 사이의 공백에서 잡념이 끼어든다. 어두운 밤, 텅 빈 음악실에서 피아노 하나가 스스로 연주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하나의 돌덩이가 내 뒤을 미끄러져 온다. 나는 급하게 몸을 틀어서 오른쪽 담벼락에 손을 집어 넘어간다. 왼팔이 지워져서 균형이 잘 안 맞는지 잘못 떨어져서 바닥에 한 바퀴 굴렀다. 오른손을 바닥에 대고 일어나서 하늘을 본다. 따라다단, 하는 소리와 함께 돌덩이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곡은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방심을 유도하지만 쉽게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이제 알 것 같다. 같은 패턴의 반복을 따라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서 고개를 앞 뒤로 흔들었다. 편하게 들으면 편하게 느껴지고 어둡게 들으면 어둡게 느껴진다. 편안하지만 독특한 곡이었다.
하얀 오선지 꿈을 꾼 지 열흘 째 되던 날, 나는 처음으로 개운하게 깨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