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이동을 노려보다
- 국민은행을 나와서 1층으로 내려가니 날씨가 화창했다. 분명 어젯밤에는 하늘에서 펑펑 비가 쏟아졌는데 말이다. 회사 내를 돌아다니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통장을 쓰인 글씨를 읽어 봤다. ‘개인형 IRP 퇴직연금신탁’이라고 적혀있었다. 통장이 약간 묵직한 듯 느껴졌다. 여기에 나의 모든 회사생활이 담기는 것이다. 이것이 회사가 나에게 주는 마지막 임금이다. 이 금액이 나에게 들어오기 까지는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원래 법으로는 15일 이내로 주기로 되어있지만, 지금은 퇴사자가 너무 많아서 한달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나는 통장을 꼭 움켜쥐었다. 여기에 입금되는 돈은 내 꿈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본금 말이다. 그 동안 회사생활 하면서 모아놓은 적금도 있지만, 여기로 들어올 퇴직금은 느낌부터 달랐다. 여태껏 받은 적 없는 큰 액수지만,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헛되이 쓸 수 는 없다. 절대로.
2.
윤 부서장은 약간 당황한 표정이였다.
“부서이동? 어디로? 왜?”
컴퓨터에만 머물러 있던 시선이 나에게 돌아온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윤 부서장은 앉는 자세를 고치고 이면지를 꺼낸다. 그리고 펜으로 이면지에 글을 끄적이면서 설명하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서장님, 저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 고졸공채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복직할 때, 회사에서는 회사사정을 이유로 저와 동기들을 생산부서로 보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생산지원부로 왔죠. 거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우리회사였으니까요. 제가 저 멀리 경기도에서 여기까지 내려온 이유 중 하나가 ‘대기업’이라는 커다란 자부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회사에서 뺏는다고, 협력사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전 그게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리 저리 알아봤는데, 품질경영부에서 인원을 충원한다고 하더라구요. 온다면 받아줄 수 있다고, 오라고. 그래서 가고 싶습니다. 가서 엔지니어가 되고 싶습니다.”
이면지에 볼펜으로 사각거리면서 낙서가 그어진다. 왠지 모를 글씨들, 부서이동, 품질경영부, 분사, 그 단어 위를 가로지르는 검은 선. 그 선들이 그 글씨들을 위에 그어진다. 찍, 찍.
“아직 분사가 제대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또 만약 분사 되더라도 여기 관리직은 몇 명 남을 텐데, 여기서 쭉 남을 생각은 없나?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분사 대표로 차고 나간다면 여기서 같이 협력 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니가 남으면 안되나?”
부서장님은 내가 남아서 도와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내가 일을 잘해서 그럴까, 아니면 말을 잘 들어서 그럴까. 내가 볼 땐, 후자에 가깝다. 말 잘 듣는 놈이 필요할 뿐이였다.
“전 엔지니어로 경험을 쌓아보고 싶습니다. 원래는 여기서 조금 더 배우다가 생산이나 설계로 부서이동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번에 분사건도 있고 하니까 지금 부서이동을 하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내가 여기서 배운 게 있다면, 밀어붙이는 추진력이였다. 일이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는거.
“그쪽은 이야기 다 됬나? 품질경영부?”
부서장님은 키보드를 두드렸다. 부서에 누가 있는지 검색을 해보시는 걸까.
“그래, 일단 알았다. 한번 알아볼게.”
그 말은 명백한 축객령이였다. 부서장의 시선은 다시 모니터로 옮겨갔다. 지금은 내가 한발 물러서야 할 것 같았다. 확답은 못받았지만, 몰아붙이면 오히려 더 큰 반발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부서장이 전화를 들어 누군가 통화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아서 꺼져있는 모니터를 보았다. 어두운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늙어보였다. 회사에서 일을 해온다는 느낌보다 회사에서 일에 치이면서 '버틴다'는 기분이 늘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회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야드를 가로지르곤 했다. 옆에 앉아있던 임차장이 궁금한 눈치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마우스를 한번 흔들었다. 곧이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메일함을 확인하자, 가득 쌓인 메일이 보였다.
“지원요청, 구매요청, 회의요청.....”
메일에는 온통 요청거리 투성인데, 내 요청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게 회사일까. ‘일단 알았다.’라는 대답을 듣고 그냥 똑같이 일을 했다. 분사가 추진된다는 소식은 일을 하면서 조금씩 귀동냥으로 들었는데, 아무래도 11월 달에는 부서이동을 막을 것 같았다. 인사에서 우리를 담당하는 이대리에게 답답함에 전화를 한통 해봤다. 인사부에서는 부서이동에 대한 이야기는 없없다. 그런데 소문으로는 이미 분사가 추진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분사 TFT 맴버 중 한명이 우리 부서장이였으니, 말은 다했다. 다만 공식적이지 않을 뿐이다.
“음, 글쎄, 인사쪽에서 제대로 진행된다고 내려온 게 없는데. 일단, 자회사나 협력사만 다니면 사내대학교를 다니는데 문제는 없어. 혹시 부서에 추진되는 사항이 있으면 나에게도 전달해줘.”
회사는 우리에게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늘 이런 식 이다. 우리는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임금을 반납하지만, 회사는 우리에게 야근수당 대신에 우리의 열정만 지불한다. 그런 우리에게 회사는 여전히 ‘기다려라, 지금은 곤란하다.’라는 대답만 내놓는다.
“네, 알겠습니다. 무슨 소식 있으면 또 연락 드릴게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 품질경영부에 있는 동기를 통해서 연락이 왔다. 만약 내가 부서이동이 된다면 김과장님과 함께 일하게 된다고 했다. 잠시 뒤, 그 과장님에게 메신저로 연락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품질경영부, 김과장입니다. 동기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시간 되면 우리 부서장님 만나러 한번 오세요.]
짧은 고민 끝에 지금 당장 가보기로 했다. 나는 행동이 필요했다. 생각이라면 이미 많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했다.
[지금 가겠습니다. 부서장님 계시죠?]
[아, 지금 바로 오신다구요? 잠시만요, 그럼 출입신청 해둘게요.]
[네, 지금 갈게요.]
내 앞에서 보이는 창문에는 빗방울이 잔뜩 맺혀있었다. 하늘은 뿌옇게 흐렸고, 빗방울은 조금씩 떨어져서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슬쩍 부서장님의 뒤편에 있는 차키를 봤다. 다행히, 부서차량이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부서차량 작성지에 서명을 하고 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야, 차 한번만 태워주라.”
옆에 있던 박사원에게 부탁해서 데려달라고 했다. 안전모에 머리를 쑤셔 넣고는 턱 끈을 조였다. 현장을 나가면서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을 때마다 족쇄를 차는 느낌이다. 불편하고, 불안했다. 내가 안전 불감증에 걸릴까봐, 현장의 위험성을 잊고 다니다가 사고에 휩쓸려 다칠까봐. 무엇보다 이 삶에 익숙해져 버릴까봐.
“어디 가는데?”
그녀는 나랑 비슷한 처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타부서의 부서장을 만난다고 말하기는 약간 껄끄러웠다. 부서이동을 하게 되면, 그녀가 가장 힘들어 질 테니까 말이다.
“내가 지난번에 다른 부서로 이동하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지? 그쪽 부서장님 만나러 갈려고. 나 끌어달라고. 나쁘지 않으면 한번만 태워줘.”
모니터를 보던 시선이 내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아, 글나? 알았다. 키는?”
주머니에서 잘그락 거리는 자동차 키를 내밀자, 그녀는 열쇠를 낚아채더니 자리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일층으로 내려가자, 그녀가 말했다.
“부서이동 할거가?”
“확정 지으려고 가는 거지.”
조금씩 떨어지는 비를 뚫고 스파크 차량에 타니, 살짝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그쪽에서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내가 갈 자리는 있을까? 다른 동기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을까? 내가 품질경영부 일을 제대로 할 수 는 있을까.
“오빠, 근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사를 따라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내 코가 석자고, 조언을 할 위치가 아니지만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 생각으로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아보였다. 그러나 벗어나서 '무엇을 할지가 가장 중요했다.
“글쎄, 니가 하고 싶은 건 있어?”
앞 유리를 빗방울이 거세게 두드린다. 비가 조금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거 없다. 아직 모르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게 우선이야. 다른 기업에 지원해본 적은?”
그렇게 분사, 이직, 부서이동,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건물에 도착했다. 그녀는 일단 다른 회사에도 이력서를 넣어보고 영어공부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건물 앞이였다. 도착한 건물은 유난히 낡아보였다.
“고마워.”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를 살짝 맞았다. 안경 위로 툭 하고 떨어진 물방울에 시야가 약간 흐려졌다. 살짝 떨렸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것 이다. 그리고 나를 평가할 것이다. 내가 쓸만한 놈인지 말이다. 건물을 올라가자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길게 늘어진 복도와 낯선 구조의 파티션들. 나는 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파티션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뻗어있었다.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안전벨트와 안전모를 챙기고, 옷을 입고 있었다. 품질경영부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사람이 없어보였다. 현장에 다들 나가있기 때문일까. 이렇게 비가 오는데.
“아, 오셨네요?”
바로 옆에 있는 파티션에서 불쑥 한 사람이 튀어나와 인사를 건낸다.
“제가 아까 연락드린 김과장 입니다. 반가워요.”
나는 그의 손을 꽉 잡아서 악수를 하고는 그의 뒤를 졸졸졸 따라갔다. 다시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기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