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이동에서 퇴사
- 1층으로 내려가서 건물 밖을 나서던 길,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정 과장이 보였다.
“넌 여기 뭔 일이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시더니 물었다. 나는 IRP계좌를 발급받았다고 말씀드렸다.
“야, 여기서 다 만나네, 저쪽에 다른 반장님도 계시더구먼. 일은 다 끝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사이, 임 차장이 내려왔다. 그도 은행 업무 때문에 온 것 같았다. 이번에 대학교에 들어가는 딸 때문에 대출을 받고 있다. 회사에서 지원하던 많은 복지 정책 중, 대학 등록금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내가 옆자리에 있으면서 그가 대출을 추가로 받는 전화를 종종 들을 때가 있었다.
“자, 같이 가자.”
하늘은 푸르다 못해서 시릴 듯 맑았다. 나는 초록색 통장을 내 품 깊숙이 집어넣고 스파크 차량에 올라탔다.
“그럼 18일로 확정 난 거가?”
앞에서 운전대를 잡은 정 과장이 말했다.
“네, 18일, 금요일까지입니다.”
그 뒤로는 조용했다. 어색한 침묵 끝에 건물에 도착하자, 나는 바로 복합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IRP 통장 사본 제출, 내가 준비해야 하는 4가지 서류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이다. 반면, 제일 껄그러운 것은 부서장님, 담당 임원, 바로 ‘결재’를 받는 것이다.
3.
이번엔 품질경영부 부서장이었다. 우리 부서장보다 더 시원한 이마라인을 자랑하시는 이 부서장은 꽤나 인품이 좋아 보였다. 물론,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옆에 자리 잡은 종이 한 장은 다름 아닌 나의 신상정보였다. 내가 하는 일, 토익 성적, 복직 일자까지.
“그래, 동기분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우리 부서로 와 준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ok입니다. 만약 우리 부서에 오면 품질 검사 업무도 있지만, 기획 업무를 맡겨 보고 싶어요. 전 순환보직을 시행하려고 하는데, 기획 업무 담당자가 일을 맡은 지 꽤 오래됬거든요.”
기획업무라면 결국 생산지원부에서 했던 일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았다. 그럼 적응은 조금 더 쉽겠지만 내가 해보고 싶은 일과는 약간 거리감이 느껴졌다. 여기서도 그저 '보고서'를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전문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실망감이 살짝 들었다. 나는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네, 우선 업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한번 해보겠습니다.”
옆에 있는 김 과장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만약 기획 업무를 맡게 된다면 옆에 있는 이 과장이 내 직속 상사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적극적이었구나 싶었다.
“품질 업무에서 검사가 나무를 보는 거라면, 기획 업무는 숲을 보는 겁니다. 숲을 보던, 나무를 보던 순서의 차이지, 결코 둘 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요. 전 개인적으로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전에 생산지원부에 있었으니까 잘 할 것 같아요. 물론, 원하는 업무가 있으면 조정해볼게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오고 싶다면 반드시 받아줄 수 있다는 겁니다. 품질경영부는 사람이 부족해서 인원을 최대한 받으려고 하고 있어요. 다만, 다른 담당으로 이동하려면 부서장뿐만 아니라 담당 결재가 필요합니다. 그건 우리도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어요. 직접 의사를 표현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것만 확인되면 바로 우리 부서로 와서 일을 시작하면 돼요.”
내가 원하는 일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하고 선주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을 그렸던 내가 바보 같았다. 늘 그렇듯이 기대가 크면 실망은 더 큰 법이다. 그리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다른 부서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네, 알겠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에 동기들도 있을 텐데, 인사도 하고 커피도 한잔 하고 가요.”
비가 오는 날인데도, 동기들은 자리에 없었다. 대부분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이 부서의 근무 환경이 대략적으로나마 보였다. 힘들긴 힘들구나. 그나마 설계 쪽으로 간 동기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잘 지내십니까, 함 사원님.”
그는 나를 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네가 여기 왜 있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복도로 나가자 자판기가 하나 있었고, 그는 음료수를 하나 뽑아주었다.
“이야기 한번 해보려고 왔지.”
내가 과연 이곳에서 쓸모가 있을지, 이곳이 내게 쓸모가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물론 내게는 맞지 않는 듯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려고?”
“일단은?”
그와 옥상에 올라가서 10분 정도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 내가 '퇴사'한다고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함 사원은 나의 부서이동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 다른 동기가 눈에 들어왔다. 정사원은 나와 자신의 부서를 이어준 친구였다.
“어, 왔네? 부서장님이랑 이야기해봤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그에게 부서 업무에 대해서 조금씩 들어봤다. 역시, 우리 부서에서 하던 일과 비슷했다. 결국, 이럴 목적으로 끌어오려고 했던 걸까. 기획업무용으로 나를 쓰려고 했던 걸까. 이야기를 듣고 함사원의 반응을 보니 그리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야 했다. 부서이동에 대해서, 퇴사에 대해서 말이다.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조금은 그쳐 가고 있었다. 안전모를 쓰고 그냥 맞으면서 사내 순환 버스를 타는 곳까지 걸어갔다. 생각을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만약 부서이동을 한다면 최소한 일 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 회사는 버틸 수 있을까. 차라리 속 시원하게 퇴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안전모를 두들기는 빗방울이 자꾸 신경 쓰였다. 하늘이 새까맸다. 순환버스에 올라타서도 멍하니 생각만 했다. 금방 내가 일하던 건물에 도착했다. 일은 쌓여가는 데,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생각이 너무 꽉 차 버려서 일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며칠을 기다렸지만 우리 부서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오히려 품질경영부의 과장님에게 몇 차례 진행 사항에 대해서 확인하는 연락만 왔었다. 부서장님도, 담당 임원님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부서장님이 사원들을 불렀다. 우리 부서에는 대리도 없었고, 사원은 고작 3명에 불과했다. 여자 경리분들을 빼고 나서 말이다.
“내가 알아보니까, 지금 당장 부서이동 하기는 어렵다네. 내가 생각엔 적어도 분사가 추진되는 다음 달에 상황을 지켜보자. 그러고 나서 상무님이 부서이동이나, 직영으로 남는 방향으로 조치한다니까. 지금 분사 TFT도 추진되고, 회사 분위기도 별로 안 좋은데 1, 2 명만 부서이동하는 건 힘들 것 같다. 한 번에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으니까, 일단 좀 기다려봐라.”
윤 부서장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느낌이 왔다. 결국, 내게 주어진 선택권은 분사가 아니면 퇴사였다. 부서이동을 하려면 기다려라, 내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와 똑같았다. 생산지원부는 예전부터 말이 많은 부서였다. 아웃 소싱하는 편이 더 효율적인 부서였고, 그게 옳은 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곳에서 쭉 있는다면 내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사가 되든, 안되든 부서 이동은 꼭 필요했고, 지금이 부서 이동하기 가장 적당한 시기처럼 보였다. 그런데 안된다고 한다.
회사의 경영악화, 품질경영부에서 제안한 업무, 내가 하고 싶은 일, 꿈,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업무, 예산관리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다른 부서와의 마찰, 잦은 회식과 윗줄 타고 들어오는 압력들까지. 이곳에서의 답답한 생활까지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정말 갑작스럽게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머리에는 이런 생각만 들었다.
‘언제쯤 퇴사하는 게 가장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