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퓨리
PTSD란 전쟁, 테러, 천재지변, 화재 등에 의한 사건으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에 나타난다. 보통 우울증,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를 동반한다. 문득, 군인의 PTSD를 연기 잘하는 배우가 생각났다. 거친 쇳소리를 내뱉는 배우, 존 번설이다.
영화 퓨리를 다시 보던 중,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미드' 워킹데드'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퍼니셔'로 알려진 존 번설은 퓨리에서도 거친 군인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는 거칠고 험상궂게 신병을 갈고지만 그런 모습에서 군인의 PTSD가 드러난다.
탄약수, 그레이디 트래비스는 쿤 애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다혈질에 거친 행동이 자연스러운 그는 첫 만남부터 신병에서 피칠갑된 탱크의 내부를 청소하라고 시킨다. 그 이후 신병에게 뒤통수를 때리면서 총 쏘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주 단순 무식하게.
"닥치고 들어. 커버 보이지? 열어. 쏴 죽이고 닫아. 그럼 못 죽여"
신병을 무시하는 태도와 불친절한 모습은 그가 경험한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한다. 그들의 탱크 퓨리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왔다는 것은 함께 했던 전우가 전사했다는 의미였다. 신병을 처음 대할 때, 퓨리의 전 차장은 아무에게도 정을 주지 말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 속에서 정을 줄수록 힘들어지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
그러나 함께 전쟁을 헤쳐나가면서 신병은 점차 전우로 성장해나간다. 이에 대한 쿤 애스의 대응도 점차 달라진다. 전쟁이란 지옥을 경험하면서 미쳐가는 신병에게 전쟁은 원래 이렇게 잔인한 거라고 진정시켜주기도 한다. 잘한 일이 있으면 먼저 칭찬해주면서 그를 대해준다. 이후에 단 둘이 있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미안해. 넌 괜찮은 놈이야. 내 생각엔 그래. 우리하고는 달라. 넌 착한 놈 같다고. 그걸 말하고 싶었어."
우리가 경험하는 군대에서도 흔히 있는 이야기다. 미친놈, 미친놈 같던 선임이 사실은 착한 놈이었다는 식의 이야기. 쿤 애스도 그랬다. 전쟁을 겪으면서 더 거칠고 잔혹해지긴 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아끼는 사람이다.
영화 퓨리는 단순하게 보면 화려한 전쟁 영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몰입해서 보면 볼수록 전쟁이란 참혹한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고통받는지 보여준다. 군인의 PTSD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탄약수 쿤 애스는 괴팍한 성격으로, 전 차장은 두통으로, 포수는 불안감으로.
영화 퓨리는 탱크 속에서 함께 전쟁을 겪는 이들의 삶을 담아내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전쟁은 이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