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가 잡아먹히다.
- 그렇게 연락을 하고, 면담을 잡았다. 이미 우리 동기들을 맡아 교육하던 이대리와는 면담을 한번 거쳤기 때문에 부담은 없었다. 인사과는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나는 안전화의 지퍼를 올리고 관련 서류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사직원, 개인정보수집 동의서, 영업비밀 유지 계약서, IRP통장 사본. 이 단순한 종이 몇 장이 회사에서 내 자리를 사라지도록,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메신저를 통해서 과장님과 대리님께 출발한다고 알리고 길을 나섰다. 건물 1층으로 내려가서 앞을 보니 뻥 뚫린 오르막 도로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인사과가 있다. 이 길이 바로 퇴사를 위한 출근길이었다.
7.
김선배 : [분사 추진되는 거 보고, 인원 확보되면 사원, 대리들은 부서이동시켜줄 테니까, 지금은 기다리래.]
김선배 : [아무래도 지금 부서 이동은 어려울 것 같다. 회사 정책 상, 어쩔 수 없다고 하니까, 일단 기다려보자.]
상무님과 이야기 끝에 선배들이 내린 결론은 여전히 단순했다.
‘기다려 봐라.’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랬다.
‘개소리하고 있네.’
이런 상황 속에서 회사는 다시 한번, 희망퇴직을 연장했다. 이미 근속연수 10년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선포한 상황에서 일자가 늘어난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참혹했다. 생산직에서 나이순으로, 희망퇴직이 고작 3년 남으신 분들에게 OT(Over Time charge), 그러니까 시간 외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5시 퇴근을 지향한다. 불과 2년 전에는 6시 퇴근이었다. 그러나 근무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구실 삼아 퇴근시간을 앞당기고 월급을 삭감해버린 것이다. 정말 근무시간이 너무 많아서 효율을 높이려고 한 것인지, 회사에 돈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기본 월급이 삭감되고 잔업수당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때 발생하는 가장 큰 논란거리는 '퇴직금'이었다. 생산직에서는 잔업수당이 매우 중요하다. 기본임금이 작고 특근과 잔업을 통해서 소득을 올리는 생산직의 경우, OT를 제한하게 되면 퇴직금이 확 줄어든다. 퇴직금은 최근 '3개월 평균임금 X 근속연수’였다. 회사는 희망퇴직을 앞둔 사람들의 퇴직금을 작게는 몇 백 만원, 크게는 천 만원 단위로 삭감해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해당 연령대에 있는 생산직 보임자들은 전부 직위를 해제당했다. 한 반을, 한 직을 담당하던 수장이 회사의 정책으로 단 하루 만에 보임을 해제당하고 일반 반원이 되어 자신이 관리하던 사람의 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굴욕이었고, 배신이었으며, 절망이었다.
그들은 바로 일 년 전, 회사의 요청으로 반원들에게 성과급을 '주식'으로 받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회사의 사정 상, '설득'보다는 '강요'에 가까웠다. 그 당시에 담당 임원이 가장 큰 회의실을 빌려서 모든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악수를 청했으니까 말이다. 나보다 강한 사람이 허리를 숙이는 것은 '부탁'보다는 '강요'로 보인다. 더군다나 우리처럼 딱딱한 회사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대부분의 부서 사람들이 성과급을 주식으로 받았고, 그 당시 옵션으로 5,820원 하던 주식은 4,400원으로 떨어졌으며 주식 거래는 정지당해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상장폐지설까지 나돌았다. 그렇게 반원들의 '적'이 되어가면서 설득에 나섰던 보임자들은 회사에게 실망했다.
“우리의 신입에는 멋도 모르고 일했어. 10년 정도 넘어갈 때는 영혼을 바쳤고, 20년이 넘어갈 때는 회사의 사냥개가 되어버렸어. 근데 지금은 펄펄 끓는 물이 가득 찬 솥에 들어가래. 우리가 '사냥개'였으니, 이제는 ‘팽(烹)’당한 거야. 토사구팽(兎死狗烹)......”
우리 부서의 오 직장은, 보임이 해제되면서 다시 반으로 돌아갔다. 내가 담당하는 반에 돌아가면서 그는 매우 씁쓸하게 웃었다. 그동안 그와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했고, 임 차장과 비슷할 정도로 의지 했으며, 도움도 많이 받았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조차 없었다. 나는 그가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자존심은 생각보다 비싸니까. 그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씁쓸하게 웃으면서 부서장님과 대화하던 그의 뒷모습에서 '애사심'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 날 이후, 잔업금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하려고 했고, 인사과에는 많은 사람이 대기를 하고 줄 서서 기다린다는 소문이 퍼졌다. 많은 이들은 회사에 실망했고, 분노했으며 노동조합은 파업 준비와 동시에 시위를 시작했다. ‘투쟁’의 머리띠와 함께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노동자의 서러움과 한이 붉게 물들었고, 새하얀 천을 수놓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더욱 열심히 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회사에 이력서를 써넣었고, 워킹 홀리데이도 지원을 끝냈다. 그러다가 덜컥 연락 온 곳은 ‘골든 프라하’라는 곳이었다. 체코 프라하의 어느 한 광장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면세점인데, 일반 영업원을 뽑고 있었다. 12월, 늦으면 1월에 올 수 있냐는 소식이었다. 알아본 바로는 체코는 영어권 국가가 아닌, ‘체코어’와 독어, 러시아어를 쓴다고 했다. 그렇다고 영어를 하나도 못쓰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영어권 국가와는 차이가 컸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회사를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슬슬 나는 언제쯤 퇴사를 이야기할지 고민했다. 체코로 가던, 가지 않던, 내게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글을 쓰기 위한 경험 말이다.
우리 파트는 매주 금요일마다 전체회의가 있다. 생산직에서 인원을 관리하시는 직장, 반장님들과 사무직 스텝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였다. 언제나 전달사항 몇 가지와 개선 요청 사항 몇 가지를 말하고 나면,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에 대해서 토론하는 자리와 변했다. 그곳에서 폭탄선언을 하기 전에, 우선 차장님께 말씀을 드려야 했다. 목요일 오후, 언제쯤 말씀 드릴까를 고민하면서 차장님의 기분을 추측하고 있었다. 보고는 언제나 타이밍이 중요했다. 호통을 훈계로, 훈계를 호통으로 가르는 것이 타이밍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업무적인 메일만 처리하다가 차장님이 밖으로 나갈 때, 슬쩍 따라가서 이야기해볼 속셈이었다.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임 차장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아이고, 반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둘은 아주 짧게 통화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임 차장 자리는 내 옆 자리였다. 오랜 경험으로 미뤄볼 때, 이건 백 퍼센트 ‘번개’, 술 약속이었다. 요즘 직장님의 보임 해제로 인해서 아무래도 씁쓸한 기분에, 술을 한잔 하자고 하신 듯싶었다. 일정 퇴사자들이 채워졌는지, 회사는 ‘잔업금지’를 2주 만에 풀어버렸다. 그때 희망퇴직한 사람들만 바보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현장도, 사무실도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를 쫓아 보내려는 ‘쇼'까지 한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 때문에 반장님이 소주가 당기시는 듯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슬쩍 일어난 임 차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깨에 솥뚜껑 같은 손을 턱 하니 올리더니,
“오늘 끝나고 약속 있나?”
역시나, 당연하게 물어본다. 임 차장은 술을 참 좋아한다. 이 술자리 덕분에, 술로 맺어진 ‘의리’ 덕분에, 나는 복직 8개월 만에 상을 받았다. 회사에서 혈연, 학연, 지연 다음에는 ‘흡연’이었고, 그다음에는 ‘주연’(酒緣)이었다. 적어도 중공업에서는 말이다.
“아니요, 없습니다. 혹시 반장님이 술 한잔 하시자고 연락 온 거예요?”
“그래, 같이 가자.”
나는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자리는 보통 3명이다. ‘퇴사’라는 폭탄을 술자리에서 던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그들의 표정이, 얼굴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과연 쉽게 보내줄까, 아니면 기를 쓰고 말리려고 들까. 말리기는 하더라도 잡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 회사에는 젊은 사원들, 대리들을 잡을 ‘비전’이 없다.
퇴근 후, 나는 임 차장과 걸어서 회사 밖에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먹자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찬란한 술집의 불빛이 우리를 비췄다. 신기하게도 회사가 어렵고 월급이 삭감되더라도 ‘음식집’은 여전히 장사가 된다. 물론 약간 손님이 줄었더라도, 술을 찾는 손님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불경기, 불경기를 외쳐도 요식업이나 술장사는 도통 줄어들지 않는다. 회사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고깃집에서 우리는 모였다. 천반장은 먼저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늘 이랬다. 천반장은 먼저 도착해서 고기를 구워놓고, 나와 임 차장이 도착하면 소주와 맥주를 따서 소맥을 만든다. 임 차장은 술을 잘했다. 그리고 소맥을 사랑했다. 시작은 언제나 소맥 3잔을 원샷, 그다음에는 소주였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임 차장의 말을 따라서 소맥을 말기 시작했다. 소주잔과 잔을 겹치고 겹치는 부분만큼 소주를 따른다. 맥주는 적당히 2/3를 따르고 나서, 젓가락으로 한번 치면, 거품이 보글보글 일어난다. 맥주잔에 기포가 퐁퐁 터지고 있었다. 폭탄주를 말던 내가 여기서 폭탄발언을 하면 어떨까? 과연 이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몹시나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