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_고백

입장을 말하다

by 글도둑

- “아니, 생산지원부에 50년 만에 인재가 왔는데, 왜 나가려고?”


인사과에 도착한 나를 본 김 과장이 말했다. 약간 웃으면서 말하는 그는 며칠 째, 턱수염을 정리하지 못했는지, 거뭇거뭇한 수염 때문에 몇 배는 더 피곤해 보였다. 아무래도 희망퇴직자들 때문에 일이 많은 듯했다. 옆에는 우리의 교육을 담당했던 이대리가 있었다. 그녀는 감기몸살 기운이 있는지, 옷을 아주 두텁게 껴입고 있었다. 그녀와는 그전에 이야기를 해놨다. 그래서 김 과장도 똑같은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아주 평범한 질문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런 질문 말이다.


“요즘 밖에 나가면 취업하기 힘든데, 어쩌려고?”


과장님은 내 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지한 대화로 넘어가는데 능숙했다. 나는 그의 코를 보면서 말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웠다.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이야기할 예정이었다.


“해외로 나 갈 겁니다.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8.

술잔이 몇 번이나 채워지고 비워졌을까. 그동안 이야기의 주제는 몇 번이고 바뀌고 바뀌었다. 회사를 말아먹고 도망친 전임 사장들, 나쁜 인사과, 회사의 비전, 예전에 같이 했던 어려운 업무, 자기 가족 자랑. 그러던 중, 회사의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우리 회사가 더 잘되려면, 인원 줄이는 게 맞다. 그게 맞긴 하는데 말이야. 이런 식은 아니다. 이건 진짜 아니다.”


“맞습니다, 이러면 나간 사람만 바보 되는 거지. 형님, 대체 회사가 왜 이럽니까?”


지금이 그 ‘때’라고 느껴졌다. 약간 남은 소주병을 들었다. 딱 두 잔 정도 나올 것 같았다. 반장님께 소주를 권하면서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부서이동에 대해서 말씀드린 건, 반장님도 아마 아실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또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부서 이동은 안 시켜주고, 상무님은 기다리기만 하라고 하고, 인사에서는 공식적인 분사 추진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고 많이 답답합니다."


소주잔에 가득 소주를 부으면서 말을 이었다.


"많이 생각해봤는데, 진짜 많이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다음 달 18일부로 퇴사를 하려고 합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임 차장은 소주 뚜껑을 따다가 깜짝 놀라서 손에 쥔 병뚜껑을 바닥에 던졌다.


“에이, 그건 아니지. 잠깐만, 부서이동해주면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기다려봐, 내 부서장한테 말하고 상무님 찾아가서 이야기할게. 내가 보내줄게. 기 달리 봐라.”


“그래, 우리 임 차장이 보내준대잖아, 조금 기다려 봐.”


그러고는 술자리가 다시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술병이 점점 늘어만 갔다. 배불리 고기를 먹어치우고, 식사로 비빔밥과 된장찌개까지 해치웠을 무렵, 임 차장이 말했다.


“천 반장님, 아니, 형님, 2차 갑시다. 2차는 제가 살게요. 아니, 얘가 퇴사한다는데 이야기 좀 더 해봐야죠.”


“알았다. 가자, 내 집 못 가더라도 간다, 가.”


천반장의 집은 통영이었다. 9시가 넘어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끊긴다. 그런데도 그는 나 때문에 2차를 따라왔다. 2차는 인근 치킨집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임 차장은 맥주 3000cc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리고 맥주를 두 잔 따라서 주고 3000cc 통에 소주 한 병을 털어 넣고 소주병으로 휘휘 저었다. 천반장과 나는 맥주를 비워내고 다시 소맥을 따랐다. 술기운이 치고 올라왔다.


“조금만 더 생각해봐. 지금은 우리 회사가 힘들고, 비전도 안 보이지만, 너네 세대가 자리만 잡으면 쭉쭉 올라가는 거야. 엉?”


“하아..... 임 차장, 근데 나는 솔직히 못 잡겠다. 우리가 솔직히 비전 없고, 사람 없고, 더 힘들어지는 거, 뻔히 아는데, 이리 젊은 애를 어떻게 잡아두니? 나는 못 잡겠다. 진짜 못 잡겠어.”


나는 묵묵히 술을 마셨다. 술을 꽤나 많이 마신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종종 그런 느낌이 든다. 알딸딸하니 기분은 좋은데 더 마시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때 술을 마시면 느끼하고 쓰기만 하다. 게다가 소맥의 에서 소주가 더 많이 들어가면 청량감보다는 알코올이 먼저 느껴진다. 갑자기 이 술자리가 회사생활만큼이나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 자리에서 상사가 권하는 대로 마시면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일도 일 짝 눈을 뜨고 출근해야 한다. 나는 잠시 일어나서 화장실로 걸어갔다. 내가 비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소변기에 서서 옆에 벽에 살짝 기대어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알코올이 훅 하고 내뿜어졌다.


화장실 거울에서 얼굴을 보니, 꽤 붉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힘들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 정신을 다리와 균형감각에 집중해서 우리 테이블로 걸어갔다. 내가 제대로 걷는지, 세상이 도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리에 가보니, 임 차장은 웬일인지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아니, 형님, 우리 얘가 퇴사한다는데, 안 올 거예요? 에이, 형님, 우리는 의리 아닙니까? 와서 말 좀 해줘요.”


같은 부서의 박 부장에게 전화한 듯싶었다. 그 사람도 술꾼이니까 말이다. 한참을 실랑이 한 끝에 통화를 끝낸 임 차장은 내게 말했다.


“그래, 퇴사한 다음에 계획은 있나? 니 성격에 무턱대로 나가진 않을 거고. 뭐하려고?”


나는 천천히 체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별건 아니지만, 해외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워킹 홀리데이도 지원해놨고, 해외에서 취업하는 것도 지원해놨습니다. 이미 면접까지 봤고, 이번 주 금요일에는 합격 발표가 납니다. 그 외, 한국에 있는 회사들도 지원해놨어요. 그래서 다음 달부터 면접, 인적성검사 보러 다녀야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회사에 대한 실망감과 내가 맡은 업무의 비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부서 이동과 회사에게 느낀 배신감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간혹 가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맞장구를 쳤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술을 홀짝였다. 그러는 사이에 박 부장이 임 차장 옆에 앉아서 내게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그래, 솔직히 잘 생각한 거다. 우리는 널 잡을 수도 없고, 잡아서도 안되고. 우리가 너에게 뭘 해줄 수 있냐. 잘 생각해보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찾아서 떠나. 그게 맞아.”


그 이후부터는 박 부장의 독무대였다. 그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나 쏟아냈다. 회사를 떠나는 게 왜 맞는지, 우리 부서의 단점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묵묵히 들었다. 사실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살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우리가 이미 밖으로 나와있었다.


"박형, 갑자기 불렀는데 와줘서 고마워요."


임 차장이 박 부장에서 말하면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천반장은 이미 택시를 잡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휘청이면서 박 부장 옆에 섰다. 임 차장이 말하는 걸 얼핏 들어보니 박 부장은 다른 회식에 참석하다가 임 차장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왔다고 했다. 심지어 계산도 박 부장이 했다. 고마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택시를 잡았다. 임 차장과 박 부장을 태우고 내가 맨 마지막에 탔다. 고현으로 가는 중간, 옥포에서 내린 나는 상사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기숙사로 터벅터벅 걸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찾아서 떠나.’ 그 한 마디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기숙사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룸메이트는 자고 있는지, 안 왔는지 불이 꺼져있었다. 나는 겉옷을 주섬주섬 벗어서 바닥에 던지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 지각할 뻔했다.

이전 07화7장_구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