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빌어먹을 계획

by 글도둑

정말 재밌게 했던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는 더치 반더린드라는 인물이 나온다. 갱단 두목인데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내게 다 계획이 있어.”


언제나 계획이 있다지만 그 계획은 틀어지고 망가지기 일쑤였기에 그런 갱단 두목을 모시는 플레이어는 화나가서 쏴 죽이고 싶었던 게임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더치 반더린드에게 은근히 정이 갔었다. 나도 언제나 빌어먹을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었고 형과 나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 늘 싸웠다. 두 살 많은 형이 언제나 이겼고 화가 잔뜩 났던 나는 결국 게임을 끊겠다는 선언을 하고 말았다. 그 뒤로 온라인 게임은 끊었다. 물론 가끔씩 재밌어 보이는 게임이 있으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푹 빠져서 산다. 스토리를 한번 쭉 밀고 나면 더는 거들떠보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게임을 끊고 나니 시간이 넘쳤다. 집과 학교 그리고 학원 사이에 비어있는 시간은 늘 게임 생각밖에 없었는데 막상 게임을 안 하니 뭘 할지 몰랐달까. 그렇다고 공부를 하고 싶은 건 아녔으니 결국 책을 읽게 되었다. 부모님은 게임하면 잔소리를 하셨지만 책 읽으면 별말 없으셨다. 공부를 피해 도망친 곳이 독서인 셈이다. 그때 처음 계획이란 걸 세웠다. 책을 읽다 보니 뇌를 쓰기 시작한 걸 지도 모른다.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의 끝에는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이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붙어있었다. 같은 이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었으니 친구들은 전부 같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갔다. 나는 중학교 때 중하위권의 성적이었다. 내가 하는 공부란, 억지로 하는 숙제가 전부였다. 그때 계획을 세웠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중하위권의 성적을 받느니 차라리 공고를 가서 상위권의 성적을 받아보자. 때마침 정부에서도 공고를 비롯한 특성화 고등학교를 밀어주는 시기였다.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프로젝트 하에 취업 장려 또한 같이 하고 있었다.


내 계획은 인 서울 대학 진학이었다. 내신 성적을 잘 받아서 대학을 가자. 계획은 나름 잘 들어맞았다. 문제는 내가 여전히 공부를 안 했다는 점과 수시를 위한 스펙이 딱히 뛰어나지 않았다는 점정도. 수시로 지원했던 대학은 다 붙었다. 서류까지는 말이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내가 지원한 과는 기계와 전기과였다. 면접에서도 시험을 본다는 사실과 내신 공부만 열심히 했던 내게 대학 면접 문제를 풀 능력은 없었다. 덕분에 면접에서는 광탈한 대학과 간신히 예비 번호를 받은 대학만 있었다. 내가 세운 계획은 이렇듯 하나둘씩 삐걱대는 점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대학을 못 갔다. 자존심을 위해 굳이 덧붙이자면 안 갔다고도 할 수 있다. 2차 수시로 붙은 대학이 그래도 하나 있긴 하니까. 그러나 대학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던 회사로 갔다. 학교에서 플래카드 걸어줄 정도로 유명한 대기업이었다. 심지어 사내대학 과정도 지원해서 전문대 졸업장도 나온다고 했다.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회사가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였다는 사실 정도. 중학생 때 세웠던 첫 인생 계획은 인 서울 대학 대신 저 멀리 거제도 조선소의 사내대학으로 아주 크게 틀어졌다. 그 뒤로도 계획이란 놈은 꾸준히, 아주 꾸준히 틀어졌다.


첫 회사를 들어가고 나서 공부란 걸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주변에 있던 동기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외고나 특목고 출신도 있었고 나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고 고등학교 때는 늘 상위권이었던 내 성적은 밑바닥을 기었다. 분명 4시간, 5시간 자면서 공부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사에서 1년간은 사내대학 과정과 OJT 연수 정도가 전부였다. 군대 문제가 남아있었기에 바로 업무를 주지 않았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뒤, 회사에 돌아오니 분위기가 어두웠다. 조선업계의 불황이 들이닥쳤고 분식회계 사건까지 터진 상태였다. 희망퇴직을 받고 있었으며 성과급은 주식으로 준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 속에서 나는 생산지원부라는 생소한 부서로 발령받았다. 내가 OJT 받았던 곳은 전장 설계부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선박의 빛을 설계하자는 의미 부여를 하곤 했다. 밤에 퇴근하면 반짝거리는 선박들이 예뻐 보였던 게 이유였다. 그게 조선소에서 계획이었다. 설계 쪽에서 일을 시작하고 3, 4년 뒤에는 생산관리로 넘어가서 직접 현장을 뛰어보자. 그리고 관심이 생기는 분야의 자격증 공부를 해보자.


근데 그런 거랑 하나도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퇴직자가 많은 지금, 복직하는 동기들은 인력이 부족한 부서로 순서대로 충원되고 있었다. 내가 간 부서는 내 선배가 퇴사한 자리였다. 나는 2기였고 퇴사한 사람은 1기 선배였다. 그 부서에서 일을 배우고 사회인으로 거듭날 무렵, 사람을 한 명 만났다. 안전부서에 있는 과장님이었다. 나에게 일을 인수인계해줘야 해서 만났는데 일을 하는 방식이 멋졌다. 그분을 보면서 안전 쪽으로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부서에서 안전보호구도 담당하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안전부서에 있던 과장님도 나를 좋게 보셨기에 무너진 계획을 다시 수정하기 시작했다.


계획을 꾸준히 수정해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또 문제가 발생했다. 생산지원부서를 자회사로 독립시키려는 안건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면 대기업의 자회사의 직원이 되는 셈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끔찍한 스트레스 속에서 일을 했다. 회사는 힘들다고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현장에서는 납기일에 맞춰 생산해야 한다며 자재를 지원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서 현장에서 욕먹고 부서에서 욕먹는 처지였다. 금요일 퇴근길에 설레었다가 토요일 현장에서 자재 없다는 전화에 출근하곤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도 아니었고 재미도 없었다. 그저 계획에 맞춰 부서이동을 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근데 자회사라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서이동을 하려고 신청했다. 그마저 실패하고 결국 퇴사했다. 25살, 첫회사에서 퇴사했다. 그리고 맨 처음에는 워킹 홀리데이를 계획했다. 호주는 너무 많이들 가니까 유럽이나 캐나다를 가고 싶었다. 캐나다는 까다로웠다. 번거로운 과정이 끼어있었고 심지어 인비테이션 레터가 무작위로 발송되는데 받은 레터의 시기에 맞춰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나는 일 년을 기다리면서 각종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을 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레터는 오지 않았다. 계획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또 계획을 세웠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북카페였다. 중학생 때 공부를 피해 도피했던 취미는 독서였다. 거제도의 회사 생활에서도 도피처는 역시 책이었다. 기숙사 옆에 있던 도서관에서 책 읽고 독서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곤 했으니까.


카페에서 일을 해보고 서비스 업이 나에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 30살 이전에 창업을 해보고 싶었다. 젊을 때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싶었으니까. 근데 창업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나는 고졸이었다. 조선소의 사내대학 졸업을 2개월 남기고 퇴사했으니까. 변변찮은 경력도 없다. 그래서 대학도 가기로 했다. 우습게도 내가 지원해서 합격한 대학은 고 3 때, 예비번호 2번으로 떨어졌던 대학이었다. 그때 계획은 이랬다. 플랜 1,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경험을 해본다. 괜찮으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한다. 플랜 1-1 잘되면 내가 좋아하는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비롯한 각종 취미활동을 덧붙인 카페를 창업한다. 플랜 2, 서비스업이 맞지 않는다면 대학을 다니면서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한다. 플랜 2-1 만약 창업했다가 망하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돌아와서 취직 준비를 한다.


그동안 빌어먹을 계획이 망가졌던 경험 덕분에 다양한 케이스를 두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코로나 덕분에 계획을 또 갈아엎어야 했다. 창업 준비를 1년 미루고 워킹홀리데이는 포기했다. 다행히 서비스 업이 나에게 맞는 편이었다. 카페 창업은 해보고 싶었다.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이 빌어먹을 계획은 언제나 내 뜻대로 풀리는 날이 없었다. 뭔가 돼가는 것 같으면 어김없이 하나가 툭 튀어나와 제동을 걸었다. 이제 계획이 엎어지는 일이 없다. 취소되는 일도 없다. 다만 꾸준히 수정되고 변하고 있다. 지금은 조금 빠르게 퇴사를 준비한다. 두 번째 퇴사다. 이번에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가능하면 개인 카페에서 일을 해볼 계획이다. 그러면 창업에 대한 확신이 생길 것이다. 실행이던 포기던 간에.

더치 반더린드는 범죄자가 아니라 무법자라는 단어를 썼다. 서부개척시대에서만 쓸 수 있는 단어였다. 신념 있던 무법자는 계획을 꾸준히 말아먹으면서 막장 3류 범죄자로 전락해갔다. 언제나 되지도 않는 계획만 내세우는 그를 보면서 내 계획을 다시 한번 떠오른다. 내 인생도 막장이 되지 않도록.

이전 04화4.오래 봤다고친한 건아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