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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괴물이라

넷플릭스 영화 '러브 앤 몬스터스'

by 글도둑

원인은 모른다. 그저 운석이 하나 떨어졌고 그 여파로 돌연변이 동물들이 등장했다. 동물과 식물은 전부 돌연변이를 일으켰고 인류는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서 최하위로 강등된다. 사람들은 군대를 통해 돌연변이 괴물들을 처리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런 암울한 시대에 한 남자가 있다. 첫 키스를 했던 16살의 그 날, 아포칼립스를 맞이했다. 그는 눈 앞에서 부모님을 잃고 괴물만 보면 몸이 얼어버린다. 그래도 그는 다짐한다. 내 첫 키스, 첫사랑의 그녀를 찾아가겠다고.


멸망한 세계 속에서도 사랑은 꽃 핀다. 그와 함께 지내는 쉘터에서도 남녀는 눈이 맞아 사랑을 하고 아이를 가진다. 그를 빼면 말이다. 외로움에 견디지 못한 그는 그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135Km 떨어진 곳에서 무전으로 그녀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홀로 쉘터 밖으로 나간다. 이유는 단 하나, 첫사랑의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전형적인 아포칼립스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재밌다. 좀비나 외계인, 크툴루 신화가 아니라 대적할 수 있는 동물이나 곤충들이 그 대상이라서 그렇다. 동물들이 끔찍하게 크게 진화했는데 적어도 화력만 충분하다면 싸울 수 있다. 주인공은 쉘터에서 주방장 역할, 그러니까 비전투원으로 살았기에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서 책을 만든다. 괴물들의 모습을 적고 강점과 약점을 적는다. 숭고하거나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불필요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런 거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내가 필요 없다는 느낌. 그런 종류의 열등감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날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했다면,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다 있다. 아포칼립스의 그는 더욱 심했다. 목숨 걸고 음식을 구해오지도, 쳐들어온 괴물에 맞서 싸우지도 못하는 그는 결국 홀로 서기를 시도한다.


혼자서 떠난 여행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여행은 다양한 경험을 선사해준다.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어두운 쉘터 속에서 열등감에 찌들었던 그는 대자연이 주는 햇빛과 시원한 빗방울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여전히 싸울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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