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언진담- 세계의 뒤편 4

by 글도둑

병호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아버지로 변해서 집에 들어가서 코를 골기 시작했대. 정신을 차려보니 누이동생도, 그도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더군. 그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누이동생을 일으켜 세우고 도망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 우선 아버지의 활과 화살을 먼저 챙겼지. 활은 습기가 들거나 열을 받으면 나무가 변형되고 아교가 녹을 수 있어서 항상 건조하고 온도가 일정한 곳에 보관해둔대. 다행히 병호가 드러누워서 자고 있는 안방에 보관해둔 게 아니었지. 그리고 그곳에 함께 말려뒀던 동물 가죽들을 싹 챙겨서 등짐을 메고 한 손에는 활을, 한 손에는 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지.


그는 울먹이는 동생을 달래면서 마을에 유일한 떡 집으로 갔어. 어느새 해가 슬슬 떠오르고 있었지. 도착한 떡 집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있었어. 지난밤에 잡아먹은 사람이 떡 집 아저씨였나 봐. 이상하게도 창고 안에 있던 떡은 남아있었대. 집 안에 있는 떡을 모조리 챙긴 후 동물 가죽에 한주먹씩 넣어서 꽁꽁 묶고서는 관아가 있는 옆 마을로 도망치기 시작했어. 어린 누이가 울 때마다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애원하면서 걷고 또 걸었지.


사냥꾼이었던 아버지와 종종 가죽과 고기를 팔러 갔던 길이였기에 호백은 길을 잘 찾아가고 있었어. 병호가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던져버리고는 두발로 서서 걸어 다니고 있었대. 8척쯤 되어 보였다더군. 대충 2m를 훌쩍 넘기는 키라고 보면 될 거야. 두 발로 성큼성큼 걸어서 요사스러운 눈으로 호백과 동생을 보더니 말했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너무나 큰 송곳니 때문에 입이 잘 안 다물어졌는지 턱에서 침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지. 그는 등 짐에 있던 떡 한 줌을 뿌리고는 다시 누이동생과 달려서 도망쳤어. 병호는 그 큰 앞 발로 동물 가죽을 이리저리 풀려다가 지쳐서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다더군. 그리고서는 네 발로 달려서 그들의 앞을 또 막아섰대. 그리고는 다시 말했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렇게 몇 번이고 떡을 주고 달리기를 반복하자 떡이 다 떨어질 때쯤, 옆 마을에 거의 도착했어. 그런데 어둑어둑해진 그 마을의 입구를 이미 병호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막고 있는 거야. 그는 생각했지, 어쩌면 둔갑한 상태에선 상처를 입힐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활을 꼭 쥐고서 입구에 팔짱 끼고 서있던 아버지 모습을 한 요괴에게 다가갔지. 떡 호랑이 요괴는 아버지로 둔갑했지만 여전히 바지 사이에서 주홍빛 꼬리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어.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서는 요사스러운 검은 눈동자가 일렁거렸지. 그는 유독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서는 씩 웃었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진호백은 등에 있던 보따리를 내던지고 누이동생을 마을 입구로 뛰게 했어. 그리고서는 얼른 화살을 시위에 놓고 당겼지. 누이동생은 입구로 뛰어가면서 호랑이가 쳐들어왔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병호는 보따리를 풀어헤치다가 떡은 안 보이고 동물 가죽만 들었으니 둔갑을 풀고 호랑이로 변하기 시작했지. 그는 신중하게 다리를 노렸어. 다리를 다치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지. 병호는 얼굴부터 시작해서 호랑이로 변하고 있었는데 다리는 여전히 사람의 다리였지.


화살이 다리를 향해 날아가자, 이미 호랑이로 돌아온 입에서 ‘어흥’ 소리를 치더니 화살이 튕겨졌어. 둔갑술뿐만 아니라 다른 도술도 부릴 수 있던 거지. 진호백은 화살을 쏘자마자 다시 화살을 꺼내 들고 병호를 겨누는데 이미 그 자리에는 사람은 없고 거대한 호랑이가 있었어. 다시 쏜 화살이 날아갈 때는 이미 호랑이의 그림자가 진호백 위를 뒤덮고 있었지.

병호는 그를 훌쩍 뛰어넘더니 마을 코 앞까지 뛰어가던 누이동생을 한 입에 삼켜버렸어. 그리고서는 뒤에서 시위를 당긴 채로 벌벌 떨고 있던 호백에게 씩 웃고는 훌쩍 뛰어서 도망치기 시작했지. 그는 힘이 풀려서 시위를 놔버렸고 그의 화살은 호랑이의 꼬리를 살짝 스치며 털을 한 움큼 뽑는데 그쳤어. 뒤늦게 호환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마중 나온 사람들이 도망치는 호랑이와 활을 들고 엉엉 울고 있던 그를 보면서 어린 소년이 호랑이를 내쫓았다는 소문이 만들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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