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게 나일세. 그 뒤로 실제로 호랑이 사냥에 나서서 호랑이를 잡긴 했지만 그건 15살 때 이야기야. 내가 왜 왕의 명을 거절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호랑이를 잡는지 알겠나? 나는 복수하고 싶어. 내 가족을 삼킨 저주스러운 요괴에게 말이야. 자네가 해야 할 일은 떡 장수가 되는 걸세.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병호는 하루에 한 명의 사람을 잡아먹는다지. 그 이상의 사람을 잡아먹진 않아. 떡은 계속 처먹지만 말이야. 그러니 걱정 말게. 무섭긴 하겠지만 나를 먼저 잡아먹도록 계획을 짤 거니까. 도와줄 수 있겠나?"
그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 그에게 말을 타고 가는 법과 활을 쏘는 법을 배웠으니까. 그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더니 다리에 매고 있던 단도를 풀어서 나에게 주더군.
“혹시 모르니 품에 지니고 있어. 만약, 정말 만약에 호랑이가 너를 덮친다면, 입을 벌릴 때 입천장에 단도를 쑤셔 넣게나. 그럴 일이 없어야 하지만 말이야.”
그는 그 말을 마치고서 이부자리에 들어서 잠을 청했지. 곧이어 드르렁하는 코 고는 소리가 났어. 나는 잠을 설쳤지. 고민이 들었어. 내가 과연 이 일을 해도 될까. 요괴는 진짜 있는 걸까. 나처럼 오래 사는 사람도 있으니 요괴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정말 위험할 텐데 괜찮을까 싶었지. 달이 중천에 뜰 때쯤, 마음을 다잡았어.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신뢰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뼈저리게 깨달았거든. 신뢰는 종이와 같아서 한번 구겨지면 아무리 피더라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 내가 만약 이번에 누군가를 배신한다면 나는 평생 배신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평생, 아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후회하지 않을까.
어쩌면 진호백에 대한 신뢰라는 이유가 아니라 이기적인 이유일 수도 있어. 어쨌든 나는 도망치지 않고 그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어. 약속했으니까. 나는 믿기로 했어. 잡은 호랑이 수만 해도 열 마리가 넘는다는 전설의 사냥꾼을 말이야. 다음 날 아침, 그는 나를 보면서 웃었어.
“다시 보니 반갑군.”
그는 내가 도망갈 줄 알았던 거야. 그냥 호랑이도 아니고 호랑이 요괴를 잡는다는데 누가 따라오겠어? 호랑이를 잡아본 착호장이나 착호인마저도 쉽사리 결정 못하는데 말이야. 나는 그의 실력을 믿었어. 그가 보여준 활 솜씨는 사람의 경지를 벗어난 것 같았거든. 내가 활을 쏘다가 지칠 때면 그가 종종 연습을 했어. 한 손에 화살을 3개씩 들고 쏘기도 하고 때로는 활이 옆으로 휘어서 날아가기도 했어. 화살 하나로 새를 잡는데 떨어지는 새를 한번 더 맞춰버렸지. 그래서 나무 옆에 박혀버린 새를 손에 들고 돌아오는데 이게 사람인가 싶었어. 그렇게 실력을 일부러 보여준 이유가 다 있었던 거지. 어쨌건 그는 나를 믿고 계획을 설명해주기 시작했어.
“이제부터 자네는 떡 장수가 될 거야. 떡을 잔뜩 사서 병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거지.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길에서 병호가 나타나면 그때 내가 그 요괴 놈을 쏴 죽일 걸세. 떡을 주면 도망칠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우리는 병호가 나타났었다는 마을로 들어섰어. 마을의 분위기는 우중충했지. 나는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마을 사람이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졌다는군. 이 마을에도 떡 집이 있었어. 다행히 아직 떡 집주인이 살아있더군. 나는 가진 돈을 다 털어서 떡이란 떡은 모조리 다 샀어. 떡이 부족하면 죽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옆 마을에 가서 떡을 팔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지. 진호백은 주막에서 술을 마시면서 사람들의 바지와 눈동자를 살펴보고 있었어. 내가 떡을 잔뜩 메고 돌아오니 그가 말했지.
“여기 대장장이가 최근 들어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이 있더군. 그놈이 아닌가 싶네. 오늘은 여기서 지내고 다음 날 떠나기로 하지. 오늘 밤 내가 알고 있는걸 전부 알려주겠네. 잘 듣고 기억해. 그게 생명줄이 될 테니까.”
그는 그날 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 사냥감을 쫓아가는 방법, 흔적을 지우는 방법, 냄새를 숨기는 방법, 잡은 동물을 안전하게 해체하는 법, 호랑이의 습성과 좋아하는 장소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떡 호랑이 요괴에 대한 이야기였지.
“누이동생마저 잡아먹힌 이후에 나는 전국을 돌면서 호랑이를 잡았다네. 그중에는 요괴도 있었어.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사람을 잡아먹으며 오랜 세월 동안 수련한 호랑이는 요괴가 된다더군. 어떤 호랑이는 천둥처럼 큰 소리를 내면서 사람을 기절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호랑이는 사람처럼 말하며 둔갑술로 사람을 속이고 잡아먹지. 그리고 아주 가끔씩 불을 토하는 호랑이도 있다고 하더군. 나는 여태껏 두 마리의 요괴를 잡았는데 각 각 천둥소리와 둔갑술을 쓰는 호랑이였어. 나는 호랑이를 잡을 때 미간을 노리는데 여기에 화살촉이 파고들면 머리를 단번에 꿰뚫고 죽일 수 있지. 근데 요괴쯤 되면 일반 활이나 화살로는 쉽게 가죽을 뚫지 못해. 그래서 바로 이런 무기가 필요하지.”
진호백은 검은 활과 화살을 보여줬어. 검은 광택이 살짝 도는 이 한쌍은 무척이나 신비로운 기운이 맴돌았지. 그는 나에게 화살 하나를 보여주더니 말했어.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가공해서 만든 걸세. 단단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요사스러운 기운을 부숴버리는 효용이 있어. 요괴를 사냥하기 딱 좋은 화살이지.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네. 그때 병호와 마주했을 때도 이런 무기가 있었다면 누이동생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때 내가 조금만 더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면 누이가 여전히 살아있지 않았을까.”
그는 우울해 보였고 동시에 기뻐 보였어.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그 표정은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했지. 함께 보름 동안 여행하면서 그는 호랑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였어. 그리고 호랑이를 잡는 것만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행동했지. 왕의 부름 아래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은 이유. 그가 전국 팔도를 떠돌며 호랑이에 집착하는 이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깊게 타오르고 있는 복수심이 내게도 너무나 잘 보였어.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미끼가 필요했네. 요괴들은 기운에 민감하거든. 예전에 착호장이나 착호인을 미끼로 써보려 했는데 금세 들통나더군. 호랑이를 쏴 죽였던 그에게도 미세한 냄새가 남아있나 봐. 호랑이의 피 냄새 같은 거 말이야. 용한 도사를 만나 물었더니 ‘업’이라는 게 쌓인다더군. 호랑이 사냥꾼들이 괜히 체격이 크고 힘이 강한 게 아니라는 거야. 자네는 아직 호랑이를 잡아본 적이 없으니 병호가 의심할 일은 없을 거야. 명심하게, 누군가 떡을 하나 달라고 하면 눈을 잘 봐. 분명 자네도 느낄 수 있을 거야. 요사스러운 기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