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자, 우리는 마을을 떠나서 으슥한 산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 어느 정도 마을이 멀어지자 진호백은 앞으로 가서 함정을 준비한다고 말했지. 함정 앞에는 돌 한 무더기가 쌓여있을 테니 잘 살피라면서. 그리고 병호가 함정에 빠지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했어. 그놈은 10년 동안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영악해졌테니 함정으론 잡을 수 없을 거라고.
나는 떡이 잔뜩 들어있는 보따리를 확인했어. 10묶음의 떡이 있었는데 포장을 아주 단단하게 해 놨지. 품 속에는 단도 하나가 있는 걸 확인했고 혹시 몰라서 양 팔에는 튼튼한 가죽 토시를 끼워놨지. 저 멀리 진호백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어. 어느새 해가 하늘 가운데에 떠 있는데 하늘이 유독 맑아서 눈이 부셨어. 나는 속으로 기도했지.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이 내 제삿날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숨을 한번 훅 내쉬고 어깨에 보따리를 짊어졌어. 묵직하게 나를 내리눌렀지만 발을 바쁘게 놀렸지. 그래도 지난 세월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인지 하체 하나는 튼튼했으니까 말이야. 사람이 많이 지나다녀서 산속에는 흙길이 하나 나 있었어. 그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냇가 하나가 나오더군. 목도 말랐고 잠시 쉬어갈까 싶어서 냇가에 앉아서 목을 축이고 보따리에서 떡을 하나 집어 들었어. 하얀 떡 안에 팥이 들어간 거였지. 한입에 털어놓고 냇가에 목을 축이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어.
나는 뒤를 돌아봤지. 한 사내가 서 있더군. 바지는 펑퍼짐했고 위에는 가죽으로 된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어. 손에는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대장장이나 쓸 법한 장갑이었지. 눈매가 위로 살짝 치켜져서 매서운 인상이었는데 눈동자에서 이상한 기운이 일렁거렸어. 코를 벌름벌름거리더니 떡 냄새를 맡았는지 내게 다가오고 있었어. 그 사내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약간 큰 송곳니를 보이면서 말했어.
“떡 하나만 줄래? 배가 고픈데.”
나는 내가 먹으려고 했던 떡을 하나 집어서 줬지. 그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떡을 집으려다가 떡을 떨어트리자, 두터운 장갑을 벗어버리고 맨손으로 떡을 집어서 입에 넣었어. 땅에 떨어진 건데 흙도 털지 않더군. 나는 보따리를 다시 짊어지면서 말했어.
“아니, 자네 손이 왜 그러나? 울긋불긋한 게 다친 것 같은데?”
그는 주황빛 털이 난 손을 흘긋 보더니 말했지. 심지어 하체를 보니 넓은 바지통 아래 주홍빛 꼬리가 살랑살랑 거렸지.
“아, 내가 대장장이인데 불을 다루다가 그만 화상을 입었지 뭐야. 떡 잘 먹었네.”
그러더니 휙 하고 몸을 돌려서 사라져 버렸어. 나는 긴장하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어. 떡 한 묶음을 던지고 도망쳐야 하나 고민했거든. 다시 산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이번에는 소녀였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어. 이 떡 호랑이 요괴는 잡아먹는 사람으로 둔갑하는구나. 그리고 저 소녀가 진호백이 말했던 누이동생이구나. 소녀는 내게 뛰어오더니 배가 고프다며 떡 하나만 달라고 했지. 소녀는 진호백처럼 눈썹이 짙고 코가 살짝 휘어있었지. 근데 눈은 똑같이 위로 치켜져 있었어. 눈동자 역시 요사스러운 검은빛이 일렁거렸지. 소녀의 얼굴과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이라 기괴하기 그지없었어. 나는 또 떡 한 조각을 주고서 얼른 자리를 떴지.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더니 이번에는 거대한 몸을 가진 텁석부리 산적이 한 명 있었어. 산적은 나를 쫓아서 뛰어오더니 소리쳤지.
“떡 보따리를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떡 냄새가 진동하는데 찔끔찔끔 먹으려니 감질이 났었나 봐. 나는 보따리에서 떡 한 묶음을 던져버리고는 냅다 뛰기 시작했지. 뒤를 슬쩍 돌아보니 산적은 없고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떡을 집어삼키고 있었어. 나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닦달해서 미친 듯이 뛰었지 어느 정도 뛰어가니 돌이 쌓여있는 게 눈에 보였어. 그 뒤에는 나뭇잎으로 가려진 흔적이 보였지. 그때 뒤에서 거대한 호랑이가 달려오고 있었어. 어흥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나는 함정 위에 떡 한 묶음을 돌려두고서 다시 뛰었어. 잠시 뒤에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무로 된 꼬챙이에 호랑이가 찔려있더군. 가죽이 아주 두꺼웠는지 피를 많이 흘리고 있지는 않았어. 나는 그래도 다시 달렸지. 그 함정으로 병호가 죽을 것 같진 않았거든. 어찌나 사람을 많이 잡아먹었는지 길이가 9척쯤 되어 보였어.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지. 나는 떡 한 묶음을 또 내던지면서 뛰어갔어. 떡을 던지면 던질수록 내 몸도 가벼워져서 더 빨리 뛸 수 있었어.
떡이 한 묶음 밖에 안 남았을 때, 그가 보였어. 호랑이 사냥꾼, 진호백이 말이야. 그는 거대한 나무의 가지 위에 서 있었어. 그는 나를 보더니 씩 웃었지. 자신이 있던 나뭇가지에서 동아줄을 하나 내려주더니 말했어.
“올라오게. 나머지는 내 몫이지.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그는 나뭇가지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하나 남은 떡 보따리를 앞에 던지고서 검은 활과 화살을 손에 들었어. 그리고는 떡 호랑이 요괴가 오기를 기다렸지. 그때 저 멀리서 병호가 나타났어.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큰 상처는 아녔는지 달리는 속도가 바람처럼 빨랐어. 병호는 떡 보따리 앞에서 갑자기 우뚝 멈춰 섰어. 앞에 있는 사냥꾼이 위협적이라는 걸 느낀 거지. 그때 병호가 활을 겨누며 입을 열었어.
“오랜만이다, 개새끼야.”
그 말과 함께 시위가 튕겨졌어. 한번, 두 번, 세 번. 순식간에 화살 세 발을 쏘았는데 한 발은 병호의 앞발에 튕겨나가고 한 발은 병호가 어흥 소리치자 튕겨나갔어. 그런데 마지막에 쏜 한 발은 직선으로 나간 게 아니라 옆으로 휘어지면서 나가더니 옆구리에 퍽 하고 박혔어. 병호는 큰 소리로 울더니 뒤로 돌아서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어. 그는 호랑이처럼 빠르게 달리면서 활을 쏘기 시작했어. 한발, 두발, 세발, 네발,... 활을 쏘면 쏠수록 병호는 고슴도치처럼 몸에 화살이 가득 박혔지.
나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따라갔어. 마침내 피를 잔뜩 흘리던 호랑이도 진호백을 따돌릴 수 없다고 여겼는지 반대로 그를 덮치려고 했어. 그도 피하지 않았지. 그는 한 번에 세 대의 화살을 시위에 올리더니 그대로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어. 병호는 쿵 쿵 거리면서 입을 쫙 벌리고서 그를 덮쳤는데 화살이 그의 입 속을 파고들더니 목을 뚫고 나왔지. 그래도 병호는 달리던 속도와 힘으로 진호백을 덮쳤어. 거대한 몸뚱이가 그를 깔 아뭉게 버린 거지.
나는 재빨리 그에게 뛰어갔어. 도착해보니 그는 거대한 체구의 병호에게 깔려서 숨도 못 쉬고 있었지. 나는 온 힘을 쥐어짜서 호랑이를 밀어내려고 했어.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지. 그의 오른쪽 어깨는 거대한 송곳니가 파고 들어서 피가 철철 넘치고 있었어. 그는 꺽꺽거리면서 내게 말하려 했어. 유일하게 깔리지 않은 왼손을 들어서 나에게 검은 활을 건네었어.
“나처럼... 되지... 말게....”
그렇게 말하고는 숨을 거뒀지. 전설의 사냥꾼치고는 허무한 최후였어.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죽었는데 속은 후련했는지 입가에는 웃음이 매달려있었어. 씁쓸한 웃음이었지. 그는 나에게 복수에 매달리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봐. 나는 여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어. 전설의 호랑이 사냥꾼 진호백은 가족을 호랑이에게 잃은 이유로 복수에만 집착했어. 위험한 호랑이 사냥에 나서고 또 나선 이유는 단지 복수심 때문이었지. 그 복수심이 그를 죽게 만든 거야. 천천히 몰아서 사냥해도 충분했을 텐데, 복수에 눈이 멀어버린 거지. 나는 그를 보면서 깨달았어. 집착은 사람을 망가트린다는 거였지. 특히 위험한 일에 집착할수록 말이야.
나는 품 속에서 단도를 꺼내서 호랑이를 해체하기 시작했어. 고슴도치가 돼버린 가죽에 박힌 화살일 모조리 뽑고 가죽을 잘라냈지. 그 고깃덩어리를 자르고 밀어낸 끝에 해가 질 때쯤, 그 밑에 깔린 그를 꺼낼 수 있었어. 오른쪽 어깨는 송곳니에 뚫려서 너덜거렸고 두 다리는 병호에게 깔려서 부러져있었지. 처참한 몰골의 그를 꺼내서 땅을 파고 묻어줬어. 내가 스승님께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였지. 그 위에는 호랑이 머리를 잘라서 얹어놨어. 호랑이 사냥꾼 진호백은 그렇게 잠들었지. 나에게 활을 알려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