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인사 좀 해주지...."
그렇게 말했던 옆집 남자가 죽었다. 어제 아침에 무시하고 지나친, 아니 어쩌면 일주일도 더 전에 지나쳤던. 그때부터 기계처럼 혼자 살던 진아의 마음에는 빈틈이 생겼다. 그 틈새 사이로 감정이라는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화는 그런 진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기만 한다.
진아는 카드 상담원이다. 헛소리하는 사람도, 욕하는 사람도, 매번 카드 값이 잘못 나왔다며 다 불러달라는 사람이 익숙해져 버린 상담원. 어떤 일이든 감정의 소모 없이 친절한 기계처럼 응대한다. 감정을 빼고 일만 한다. 그러던 그녀에게 돌어가신 어머니와 그 재산을 전부 가져간 바람피우고 돌아온 아버지, 진아가 교육해야 하는 신입 사원, 그리고 갑자기 죽어버린 이웃 남자가 틈을 만든다.
영화 속 진아는 늘 스마트폰과 함께한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소리'와 함께 한다. 혼자 사는 집에는 TV가 늘 켜져 있다. 걸을 때도, 버스를 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담배를 피울 때도 진아의 눈은 스마트폰에 붙어있다. 외로움. 진아는 그 적적하고도 어두운 단어를 이겨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소리를 선택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소리.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귀찮게 하지 않는 소리. 내가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소리.
진아는 선택해서 듣는 소리 사이에 외로움을 묻어놨다. 집 나갔다가 돌아와서 어머니의 재산을 가로챈 아버지에 대한 분노,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갑자기 출근 안 하는 신입 사원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옆집 사람에 대한 미안함까지. 많은 감정들이 외로움과 함께 가슴속에 잠자고 있었다.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닫아버린 진아. 그러나 닫힌 마음속에서 감정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분노로 폭발했던 감정이 올라오자 그 밑에 깔려있던 미안함과 안쓰러움, 고마움까지 솟아오른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신입 사원에겐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어버린 옆집 남자에겐 못했던 인사를 건넨다.
어둠과 소음에 외로움을 묻어놨던 진아의 삶도 변해간다. 커튼을 걷어 방엔 빛이 들어오고 잘 때도 틀어두던 TV가 거슬려 끄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맨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때는 어제도 봤다는 남자가 죽은 지 일주일도 넘었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어? 추리, 스릴러 영화인가?' 싶었다. 그래서 봤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건가 싶어서. 아니었다. 영화는 담담하고 담백하게 흘러간다. 진아의 삶을 비춰주며 단절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진아를 보여준다.
영화 속 진아는 미분당에 가서 쌀국수를 먹는다. 점심마다 꾸준히. 영화를 보고 나서 미분당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다. 미분당에는 혼자서 조용히 즐기는 식당이니 일행끼리 오더라도 조용해달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진아가 그곳만 가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쌀국수는 따뜻했고 맛있었다.
별생각 없이 틀었다가 진아의 외로움에 슬며시 공감하게 되는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