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워커, 그린

영화, 맨 프롬 어스

by 글도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를 다시 봤다. 이 영화는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진 않는다. 화려한 액션신이나 격정적인 배드신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때문이다.


주인공 존 올드맨은 대학 교수로 일하다가 종신직을 포기하고 떠나려 한다. 평판이 좋았던 그를 위해서 직장 동료, 즉 대학 교수들이 몰려와 그를 배웅하려 한다. 그러면서 계속 물어본다. 무슨 일 있는지, 왜 떠나려고 하는지. 처음에는 개인적인 일이라며 선을 긋던 그는 망설이다 말을 꺼낸다.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석기시대부터 여태껏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리고 그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떠나버린다면?"


그때부터 존 '올드맨'은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로지 집에서 대화하는 것으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면서. 대단한 점은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존의 이야기를 서서히 믿게 된다는 점이다. 설득력 있는 그의 말에 대학 교수인 동료들도 하나둘씩 그의 말에 반박하다가 납득하고 되려 그의 말에 덧붙이는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재밌으면서도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준다. 인류의 선택과 종교에 대해서 말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대화로만 전개되는데 이런 재미와 고민을 안겨주는 영화는 없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종종 다시 찾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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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찾아온 동료들을 위해서 술병을 하나 꺼내 든다. 이때 꺼내 든 술은 '조니 워커 그린'이다. 존은 언제나 해가 뜨는 쪽으로 걸어갔다고 말한다. 해가 뜨는 쪽이 더 따뜻할 것 같아서 말이다. 조니 워커는 위스키 브랜드로 'Keep walking'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술이 아닐까.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으면 방 안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영화, '맨 프롬 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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