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_후기

퇴사 메일과 그 이후

by 글도둑

15.


From: <half7056@naver.com>

To: 동기 전체; 1기; 3기; 4기;

Cc:

Sent: 2016-11-18 (금) 7:55

Subject: 출사표

퇴직 인사드립니다.

글이 조금 깁니다. 심심하시면 한번 읽어보시고, 바쁘신 분은 그냥 휴지통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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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저를 모를 겁니다. 누구는 저를 안다고 생각할 거고, 누구는 저를 조금 알 겁니다.

누구는 저를 잘 알 거고, 누구는 저를 신경도 안 쓸 겁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분께 하고 싶은, 전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미 내친걸음입니다. '시민의 불복종'에는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그래요,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우리는 타이타닉에 올라탔습니다. 이 선박에 오르기까지 각자 사연이 많겠죠.

힘겨운 공부 끝에 대학 대신 선택한 것이 바로 이 회사였으니까요.

덕분에 우리는 누구보다 색다른 경험을 얻었습니다.

우리 나이에 손에 넣을 수 없는 경제적인 여유로움과 척박한 사회생활이 그 경험의 일부죠.

반대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캠퍼스의 낭만, 아르바이트의 지루함, 자유로운 시간.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희생한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

그건 우리가 절대 되찾을 수 없을 겁니다. 이미 그 시절은 떠났으니까요.

한번 뻗어간 우리의 생각은 두 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유학을 가던, 대학을 가던, 이곳의 경험은 우리를 사회인으로 만들 겁니다.

물론,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요.


중요한 것은 ‘우리’입니다. 침몰해가는 타이타닉에 탄 우리들.

정부는 일단 우리를 인양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 상황에서 정부가 우리에게 뭘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정부조차 어릿광대의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들일뿐인데 말이죠.

수술을 무서워하는 의사 덕분에 호흡은 이어지지만,

다음에 수술을 집도하게 될 의사는 그냥 안락사시킬지 누가 알까요?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사회에 나왔고, 누구보다 먼저 회사를 겪게 되었죠.

그 끝에 있는 건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이곳에서의 끝은 먼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목표를 현실처럼 바라보고 돌진하지만, 도착한 곳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다가가면 흩어져버리더니, 저 멀리에 또다시 나타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꿈을 보고 달려야만 합니다.


이곳에서 꿈을 찾았다면 우리는 정말 행운아일 겁니다. 아쉽게도 전 아니지만, 여러분은 이곳에서 꿈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냥 일이 힘들어서,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도망치는 거 아니냐고.


깊게 생각해봤는데, 맞아요, 도망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불안한 환경에서 도망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더 이상 우리에게 확신을 주지 않는데, 우리는 뭘 믿고 이곳에 청춘을 바칠까요?

불안은 커지는데 회사 소식은 온갖 선전지와 언론으로 먼저 알게 되고,

정부에서 들이대는 메스는 우리를 살리기보다는 출혈만 일으켜 버립니다.


흔히 ‘대마불사’라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죽지 않을 겁니다. 다만 조금 절뚝거릴지도 모르죠.

제가 도망치는 걸로 봐도 좋습니다. 혹은 도전하러 간다고 봐도 좋아요.

우리는 스무 살에, 고졸 채용이라는 마이너 리그에 올라왔습니다. 1 선발이 아니라 2 선발로.

지금은 그 리그를 벗어나 다른 곳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거제도에 몸뚱이 하나만 믿고 내려왔던 것처럼,

아직 튼튼하고, 젊은 몸뚱이 하나만 믿고서 말이죠.


그래서 출사표라고 제목을 넣어봤습니다. 결국은 사표지만요.

지금까지 저의 못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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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메일 보내고 몇몇 동기들은 나를 질타를 했다. 회사가 힘든 걸 뻔히 아는 데, 굳이 이런 자극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었다. 보내고 나서 그런 동기들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자극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과 메일을 하나 더 보냈다. ‘불쾌했다면 미안하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내가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말이다. 그들은 나와 다른 부서에서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나처럼 '분사'에 대한 위험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 나처럼 믿고 따르던 직장이 회사에게 뒤통수를 맞는 걸 봤는지 모르겠다.


몇몇 동기들은 나에게 공감과 응원을 보냈다. 그런 그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알량한 글로 남에게 자극을 주기는 어렵다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쉬워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말이다. 나는 나의 경솔함을 탔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들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내가 퇴사하게 된 과정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부서이동 실패한 기분과 아웃소싱의 대상자였던 나의 고민을 모른다. 내가 믿고 의지하던 직장님이 회사에서 버림받고 한숨 쉬며 술을 마시는 것도 괴로웠고, 윗선에서 내려오는 청탁도 거절하기 어려웠다. 회사를 망치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는 바로 나였다. 그래서 때려치웠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다.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걸로 밥벌이를 못할 것 같아서,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북카페에 대한 생각 했다. 결국, 북카페도 ‘책’에서 출발한 건 똑같았다. 해외에서 살아 보려는 시도는 '시도'에 그쳤다. 체코는 포기했으며, 호주 시드니는 6개월짜리 일이라서 버렸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물론, 20대 중 한 순간은 반드시 해외에서 살아볼 계획이다. 한 도시에서 꽤 오랫동안 말이다. 한국에서 못 벗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시작한 일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에디터 활동에, 서평단, 학생기자,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도 다 해보고 있었다.


빠르면 내년, 느리면 4년 뒤에 북카페를 차릴 예정이다. 그리고 잘되면 '2호점 오픈', 잘못되면 '파산'이라는 극과 극에 달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의 삶에 만족스럽다는 사실이었다. 회사에서 힘들 때, 매일 밤이 즐거우면서 두려웠다. 오늘도 하루를 길게 썼다는 즐거움과 내일은 또 무슨 일을 할지, 어떤 문제가 있을지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은 밤이 되면 아쉬웠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스물 넷이다. 스무 살부터 시작한 회사 생활과 사내대학 공부, 꽤나 힘들었던 군 생활.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고, 회사를 그만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 회사의 경영사정에 고마웠다. 회사가 만일 승승장구했다면, 나는 그 속에서 고통받으면서 남아있었을 것이다.


‘돈’과 ‘시간’을 맞바꾸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줬다.

“아직 너의 나이가 시간과 돈을 바꾸는 시기는 아니야. 더 즐길 나이지.”


난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불안함보다 즐거움이 컸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나의 '마지막 출근'은 그렇게 끝이 났다. 회사는 아직까지 침몰하지 않았다. 곧 워크아웃에 들어갈 거라는 기사와 새로운 선박을 수주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지만 나는 상관이 없었다. 분사의 대상이었던, 아웃소싱의 대상이었던 우리 부서는 여전히 회사에 남아있었다. 현재 분사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볼 것이다.


시민의 불복종에 그런 말이 나온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두고 보도록 하자. 누가 더 강한지는 말이다.



'마지막 출근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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