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다
- 이제 시간이 없었다. 만났던 사람이 많으니, 약속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우선 내가 원래 살던 경기도와 거제도가 너무 멀기 때문에, 이번에 안 보면 평생 안 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더욱 한번 더 보려고 노력했다. 친한 동기들과 회사 동료들과 약속을 잡아, 먹고 마셨다. 2주 연속으로 술을 마시니, 출근 시간이 늦어졌다. 우리 부서의 경우, 아침, 저녁 교통정리를 과장급과 부장급만 해서 다행이었다. 만일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면 최소 7시 이전에 도착해야만 했다.
사실, 교통정리도 현장직 분들이 했었다. 조기출근 수당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조기출근 수당을 줄이기 위해서 사무직에게 교통정리를 하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수당 따위는 없었다. 흔히 말하는 '열정 페이'는 노조가 없는 사무직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불합리함이 너무 싫었다. 참 개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 사무직을 공짜로 부려먹겠다고 일을 추진한 놈이나, 그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회사나, 개 같은 놈들이다. 그런 개소리를 회사에서는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우리 앞에 쏘아붙인다.
13.
내가 나간다는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다.
“나가요? 아니, 왜요?”
“그래, 잘 생각했다. 솔직히 젊은 애들은 나가서 뭘 하던 상관이 없잖아. 우리는 아니지만.”
“나가서 해외로 간다고? 하, 부럽네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책임이 있어서 힘들어요. 물론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해외에서 살면 재밌을 거 에요. 아직 일하면서 돈 벌 나이는 아니잖아요? 솔직히 지금 20대가 아니면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어려워요. 이기적이지만, 이럴 때 다 해봐야 돼요.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아쉽네요. 그래도 일을 많이 도와줬는데. 그럼 일은 누가 인수인계받나요? 임 차장이요? 아, 이거 큰일 났네. 저희 예산이나 좀 올려주고 가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그렇게 업무 상 많이 만났는데, 술 한 잔, 밥 한 끼도 못하고 가네요. 아쉽지만, 가서도 잘 할 거 에요. 그럴 것 같아요.”
“아니, 그래도 술 한 잔은 하고 가야 되는데. 미리 형한테는 말을 했어야지. 인마! 그래야 좋은 곳으로 2차도 보내주고 그럴 텐데, 짜식. 시간 되면 연락해라. 형이 좋은 곳 데려가 줄게.”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내가 과분한 직장동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한때는 언성을 높이고 싸우기도 했고, 서로 도와주면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늘 내가 어리고 젊다는 이유로 많이 도와주었다. 조언이나 충고도 많이 해줬고, 종종 밥도 얻어먹었다. 그들은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 때문에 그나마 회사가 유지되고 있었다. 반대로, 위에 있는 높으신 분들이 그들을 갈구고, 못살게 굴기 때문에 회사가 여기까지 왔다. 제 때 뽑아내지 못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우리를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퇴사를 마음먹고, 이곳, 저곳에 인사를 다니자, 시간은 훌쩍 가버렸다. 김반장의 도움으로 기숙사에 있는 짐을 집으로 바로 보냈다. 작은 트럭에 박스를 실었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쓸모없는 것도 많아서 전부 버렸다. 우리는 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걸까. 언젠가 쓸 것 같아서? 아니면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걸까. 이참에 전부 버렸다. 늘어난 옷, 이젠 잘 안 쓰는 와인 오프너, 독서 대등 등 공간만 차지하는 것들 뿐이었다. 정리를 하고 나니, 박스 3개와 캐리어 하나, 그리고 테니스 라켓 가방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 짐을 트럭에 보내버리자, 방이 텅 비였다. 그동안 내가 ‘집’이라고 부르던 곳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익숙한 기분을 언제 느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직장동료나 동기들, 친구들이 퇴사일이 가까워질수록 그런 질문을 많이 했다.
“퇴사하는 기분이 어때? 후련해? 아니면 시원 섭섭?”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말년병장이 된 느낌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앞날 살짝 두려우면서 설렌다.”
그래, 말년병장 같았다. 모든 걸 정리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그 정리의 시작은 언제나 나의 흔적을 깔끔하게 치우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누군가가 이 자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귀찮은 ‘정리’ 말이다.
퇴사가 일주일 정도 남은 날, 김반장이 불러준 회식 자리에 나갔다. 작은 음식집을 통째로 빌려서 백숙을 먹고 있었다. 다행히 김반장이 맡은 반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다. 밥을 먹고 배를 채우기까지는 각자 떠들면서 술을 홀짝였다.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음식들이 슬슬 비워질 무렵, 총무 혹은 모임 회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 회사의 회식은 늘 비슷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 다들 이야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에 희망퇴직하신 우리, 두 기감님들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자, 우선 이 기감님부터 한 말씀하시죠?”
이번에 잔업수당이 사라지자, 바로 희망퇴직을 신청하신 분이 두 분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우리 회사를 떠났다. 그 뒤, 잔업수당은 다시 원상복구 되었지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급하게 희망퇴직하게 되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비록 이렇게 회사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런 자리 있으면 불러주시고, 연락해주시면 언제든지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농사나 지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건배제의는 ‘건강을 위하여’로 하겠습니다. 그럼, 건강을 위하여!”
이런 건배제의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희망퇴직하신 분, 새로 보임을 받은 직장님, 담당 반장님의 한 마디 외 건배제의 말이다. 이렇게 되면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채우고 비워냈다. 4잔을 마신 끝에 나의 차례가 왔다. 총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한번 다들 인사했겠지만, 우리 스텝으로 많이 도와주던 이 친구가 이번에 퇴사를 하게 됬답니다. 가는 마당에, 한마디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소주가 찰랑이는 소주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5명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나의 아버지뻘 이였다. 어린 나이에 입사해서 일을 배우면서 이들에게 많은 실수를 했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아들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때로는 잔소리로, 때로는 과자나 커피로.
“안녕하십니까, 이미 한번씩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지만, 여기 김반장 님과 총무님이 불러주셔서 염치 불고하고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여기 닭백숙 맛있네요. 이런 자리에 초대해주신 우리 김반장 님, 총무님께 감사드립니다.
크흠, 제가 우리 반을 맡게 되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실수할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여기 계신 분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셔서 그나마 잘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일 하면서 실수한 것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드립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저를 많이 챙겨주시고 아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잘 지내겠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계신 '우리의 앞날을 위하여', 로 건배제의를 하겠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위하여!"
최대한 조금 마시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소주가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이상했다. 더 이상 마시면 내일 못 일어날 것 같다. 소주잔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자리가 정리가 되면서 2차 갈 사람은 따로 가고 남은 사람은 이 자리에서 술을 한잔씩 더 먹고 있었다. 나도 슬슬 나갈 준비를, 그러니까 2차를 도망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주섬주섬 챙기는 옷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깎은 지 꽤 되어 보이는 턱수염, 충혈된 눈.
"그래, 결정은 잘 했다."
평소 나와 자주 연락하던 이기정이었다.
"근데 말이야, 그래도 밖에 나가게 되면 회사 욕은 하지 말자. 우리끼리 회식할 때나 이야기할 때는 상관없어. 그런데, 밖에서 다른 사람 만날 때는 회사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는 하지 마라. 그게 결국 니 얼굴에 똥칠하는 거다. 알았지?"
그는 내게 소주를 따라 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술 냄새가 훅 하고 다가왔다.
"나도 회사 욕하고 싶고 떠나고 싶어, 근데 그래도 널 뽑은 회사고 네가 몸을 담았던 회사야. 그러니까 좋은 기억만 가지고 좋게, 좋게 가라. 가서 잘 하고, 인마."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술을 따라주고 건배를 했다. 술의 뒷맛이 많이 썼다.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근무복을 주섬주섬 챙겨서 밖으로 나와 보니 사람들은 2차 가는 사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나는 술을 안 마시는 김반장과 함께 자리를 빠져나왔다. 회식이 기숙사 근처였기 때문에 나는 김반장에게 인사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내일은 도장 부서 사람과 회식이었고, 그다음 날은 부서 송별회였다. 일 년 치 술을 2주 만에 다 마시는 것 같았다. 술이 지겨워질 정도로 익숙해졌다.
남은 짐을 전부 버려버린 다음 날, 나는 마지막으로 할 이를 정리 했다. 우선 첫째, IRP 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만 50세 이하는 퇴사할 때, IRP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몇몇 사람들은 돈을 받기 더 어렵게 만든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직원을 작성하고, 개인 정보이용동의서, 영업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셋째, 부서장과 담당 임원의 결재를 받아서 인사과에 제출한다. 이 절차는 퇴사 3일 전까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바로 은행이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은행이 있는 건물까지 걸어가려면 대략 30분 이상 걸렸다. 그 경로에 있는 건물을 전부 들려서 신세를 진 분들에게 전부 인사를 드릴 생각이었다. 신기하게도 발걸음은 가벼웠고 날씨는 시원했다. 가을이 다가오려나 보다. 다른 부서 앞에 도착하니 땀이 약간 났다. 나는 심호흡하고 어떻게 해야 마지막 인사를 잘 드릴지, 말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