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길을 나서다
14.
드디어 마지막 출근이었다. 알람이 시끄럽게 울었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어제도 꽤나 많이 마셨다. 대신 룸메이트가 씻는 샤워기 소리 덕분에 잠에서 깼다. 원래라면 조금 더 빨리 일어나 준비하고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도착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제의 송별회의 여파가 너무 커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책상을 보니, 회식 때 받은 전별금 봉투와 기프트 카드가 보였다. 내가 이런 걸 받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내가 냈던 회비만큼 다시 돌려받은 듯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결혼하면서 퇴사한 김경리가 그 당시 내가 냈던 축의금을 그대로 돌려줬던 점이었다. 이걸 주기 위해서 송별회 때 참석했나 싶었다. 그녀는 나를 꽤나 좋아했다. 술을 잘 마셔서, 술자리에서 빼지 않아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막내로서 빠릿빠릿해서 말이다. 나는 그녀가 준 봉투를 보고 나서야 어제의 일들이 머리를 살짝 스쳐 지나갔다.
부서 송별회는 꽤나 좋은 곳에서 했는데, 고급 일식집으로 참치가 나왔다. 일인 당 5만 원짜리 식사였다. 당연히 부서 회비를 통해서 충당되었지만, 윤 부서장과 새롭게 직장으로 올라간 박반장이 찬조를 했다. 가끔씩 찬조금을 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떤 직책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부담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직책을 가진 사람은 다양한 경조사를 챙겨야 했다. 그게 예의였으니까 말이다. 경조사비로 한 달에 수십만 원이 나간다고 푸념하던 오 직장이 문득 떠올라서 술맛이 약간 씁쓸했다. 더 이상 직장이 아닌, 오 직장이 말이다.
일식집에서는 내가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술을 따르고 술을 받아 마셨다. 이것도 원래는 예정에 없었지만, 임 차장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말했기에 할 수밖에 없었다.
"류사원, 이럴 때는 한잔씩 따라드리는 거야. 마지막인데 깔끔하게 끝내야지. 안 그래?"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맨 끝에 앉아있던 부서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소주잔에 4/5까지 소주를 따라드렸다. 경기도에서 친구들과 마실 때 이렇게 술을 따르면 '미쳤냐'소리를 듣지만, 여기서는 늘 이렇게 따라주고받았다. 아니면 '내게 주는 술이 아깝냐'소리를 들었다. 나는 조선소에서 술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길들여졌다.
이번 송별회는 나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올해를 끝으로 정년퇴직을 하는 송기원 님이 계셨다. 그는 35년을 회사에 몸을 담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퇴사한다고, 해외로 나가보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젊었다면 너처럼 해외로 한번 나가볼 거야. 그게 엄청 큰 차이거든. 잘 생각했다. 넌 잘 할 거야. 장하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생각한 것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갈 용기도 말이야. 나는 이 회사와 함께 자랐거든. 그래서 '회사'를 떠나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 물론, 이렇게 정년퇴직하는 걸 그려보긴 했지. 35년이나 일했는데 금방 가더라. 금방......."
그가 회사에서 먹었던 밥이 내가 평생 동안 먹었던 밥보다 많았다. 그는 회사의 살아있는 역사였고, 증인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직장인은 사회에 나와서 두 번 죽는다고. '한 번은 회사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다른 한 번은 역시 자신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회사생활을 마감할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라고 말이다. 그는 35년 간 회사에게 헌신했다. 그리고 퇴직한다. 그런 그가 위대해 보이면서도 초라해 보였다. 그가 들어갔던 회사는 아주 컸다. 그리고 많은 고난과 역경 끝에 최고의 조선소가 되었다. 그런 전성기를 지나서 지금은 흔들거리고 있다. 최고의 시절을 함께했던 그가, 최악의 시절을 견뎌냈던 그의 회사생활의 끝은 최악으로 치닫는 한가운데였다.
내가 모두에게 술을 한잔씩, 돌렸을 무렵 총무를 맡고 있던 장 반장이 일어나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자, 자, 다들 식사는 어느 정도 하셨지요? 이렇게 회사가 어려운 와중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우선, 우리 오 직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는데, 이번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다시 우리 1반, 반원으로 들어오게 되셨습니다. 솔직히 회사에서는 존경하는 직장님이셨고, 밖에서는 좋아하는 형님이셨는데, 이렇게 돼서 아쉽습니다. 그럼 오형! 마지막인데 그래도 소감 한마디 해주셔야죠."
오 직장은 늘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취해서 불그스름한 얼굴에도 인자한 웃음이 간신히 매달려있었다. 그는 소주잔을 들고일어났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직장으로 잘 따라와 준 우리 반장님들에게 감사드리고, 우리 부서장님, 임 차장, 류사원, 박사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다시 반으로 돌아가면서 1반으로 넣어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쪽에서 일하는 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도 안 가고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그 부분은 양해해주고요. 우리 새롭게 직장이 된, 박 반장이 다른 반원들을 잘 이끌어줄 거라 봅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건배제의는 '박반장을 위하여'로 하겠습니다. 박반장을 위하여!"
"위하여!"
건배제의는 계속되었다. 정년을 앞둔 송기원, 그리고 나의 차례까지 말이다. 나는 모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의 건배제의는 늘 똑같았다. '우리를 위하여'. 여기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를 위해서 울먹이는 박사원을 위해서,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에 달려와 주었던 결혼하고 퇴사한 김경리를 위하여, 나에게 좋은 말을 끊임없이 해주는 만취한 오 직장을 위하여, 내가 떠나게 돼서 많이 섭섭한 임 차장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송별회가 끝났다. 그 외에도 모두에게 술을 받아 마시면서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잘 살아라.’라는 의미가 담겼던 말로 기억할 뿐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쭈욱 켜면서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방바닥에 널브러진 헛개수를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약간 들었다. 방을 둘러보니 심하게 텅 비어 있었다. 남아있는 옷가지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깔끔해 보이는 셔츠를 골랐다.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근무복에는 회식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다른 옷이 없었다. 당장 빨기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림질만 살짝 하면서 옷을 폈다. 그러는 사이, 내 룸메이트는 씻고 먼저 나갔다. 나는 꽤나 여유로웠다.
회사를 나가게 되면 더 이상 칙칙한 근무복을 입을 필요가 없어졌다. 누런 동잠바와 짙은 남색의 바지, 회색빛의 근무복 상의. 내가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고는 전부 반납해야 했다. 작은 가방에 쑤셔 넣었더니 가방이 터질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7시였다. 회사로 가는 통근 버스는 5시 55분부터 7시 30분까지 있었다. 이렇게 늦게 출근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복직 초기, 잘해보려고 첫차를 타고 출근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아침이 무척 어두웠다. 어둡던 아침이 여름을 지나며 밝아졌고, 어느새 다시 어두워졌다. 어두운 아침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내가 밝아질 때 출근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반납해야 하는 것을 전부 가방에 넣고 키를 집어 들었다. 나는 고졸 공채 동기와 룸메이트였다. 내가 나간 곳에 다른 동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키를 책상에 내려놨다. 내가 사서 달아놓은 열쇠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반짝거리는 열쇠고리는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것도 동기에게 주기로 마음먹고 그대로 나왔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이미 해가 훤하게 떠 있었다. 언제나 어두컴컴한 밤에 통근 버스를 탔던 나에게는 웃음이 나는 광경이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면 불과 3분 거리에 통근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시간대가 늦어질수록, 기다리는 줄이 점점 늘어났다. 사람들은 전부 가방을 하나씩 매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승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서서 가기 싫었는지, 자리가 꽉 차면 타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몇몇 사무직처럼 보이는 이들은 서서라도 타고 갔었다. 자리에 가서 컴퓨터를 켜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통근 버스를 한 대 보냈다. 늦더라도 앉아서 편하게 갈 생각이었다. 통근 버스는 종류가 2가지였다. 회사에서 셔틀버스로 운용하는 버스는 통근 때도 사용됐는데, 일반 버스처럼 누르는 벨이 있어서 편했지만, 좌석이 별로 없었다. 대신, 관광버스와 같은 통근 버스는 벨이 없었지만 좌석이 많아서 앉아가기 좋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타게 된 버스는 관광버스 타입이었다. 나는 앞쪽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창문 밖으로는 거제도의 풍경이 보였다. 회사로 가는 길, 살짝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회사의 풍경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출근보다는 퇴근 무렵, 회사의 풍경이 더 아름답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선박들이 조선소의 밤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버스에 내리니 스마트 폰이 7시 20분이라고 보여줬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내가 일하는 건물 앞에는 자그마한 세탁물 처리소가 있었다. 그 옆에는 샤워장과 헬스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샤워장과 헬스장은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세탁물 처리소에 가서 옷을 주섬주섬 꺼냈다.
“여기, 퇴사자 근무복 반납입니다.”
세탁소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퇴사한다고요?”
“네, 퇴사자들은 가까운 세탁소에 옷을 반납하라고 공지받아서요. 아닌가요?”
“아, 그럼 그냥 받아만 두면 되죠?”
“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하계 근무복 2벌과 동계 근무복 1벌을 반납했다. 두꺼운 동잠바도 마찬가지였다. 세탁소를 나오니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일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사무직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불과 몇 달 전에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는데 말이다. 건물의 지하 1층에는 식당이 있다. 회사에는 26개의 식당이 있는데 아침, 저녁은 500원으로 먹을 수 있었다. 사원증을 찍고 먹으면 자동으로 월급에서 삭감되었다.
딱!
전자음과 함께 스크린에 내 사 번과 사진이 떴다. 보통 아침메뉴는 2가지였다. 한식과 분식으로 구분되는데 보통 아침밥이 그렇듯 더럽게 맛이 없다. 분식은 빵과 수프, 그리고 샐러드를 줬다.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기에는 분식이 더 편했다. 나는 식빵 2개와 양송이 수프, 샐러드와 드레싱 소스, 쨈과 버터를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회사 식당에는 TV 모니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회사의 소식과 홍보영상, 그리고 생일자의 축하 자막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회사 소식을 보면서 조용히 빵과 수프를 먹었다.
[00 프로젝트 성공적 인도]
[회사의 앞날, 노조의 동의에 달려있다.]
[칭찬합시다! 00 엔지니어링!]
사내 신문과 TV에는 늘 좋은 이야기와 기사들이 실렸다. 우리 회사 주식이 감자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실’을 담았다. 그 뒤에 있는 후폭풍과 여파는 쏙 빼놓고 말이다. 감자가 되면 주가총액은 유지되고 주식의 숫자는 줄어든다. 그 이후, 회사가 유상증자와 주가 하락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거면 그냥 백과사전 찾아볼 텐데 말이다. 회사의 신문과 사내 TV란, 그저 우리를 세뇌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외 여러 노동조합에서 만든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노조인원이 말다툼 끝에 사무실의 컴퓨터를 던져버리고, 부장을 멱살 잡아끌고 갔을 때, 노조의 신문에는 언급이 없었다. 이 시대의 사무직은 봉이자 호구였으며 가장 약한 존재였다. 적어도 생산직은 '노조'라는 보호막이 존재하지만 사무직은 아니었다. 사무직은 회사의 입맛대로 쓰고 버리는 존재였다.
식기를 놓는 곳에는 자동으로 돌아가는 레일이 있었다. 그곳에 식판을 올려놓고 앞에 있는 휴지통에 휴지와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4층까지 올라가면 우리 사무실이 있다. 올라가는 와중에 마주치는 직장동료에게 간단한 아침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그들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제 갈 길을 갔다. 나 또한, 갈 길을 갔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왼쪽과 오른쪽에 기나긴 길이 하나 있다. 양쪽으로 부서들이 주르륵 있었는데 나는 입구에서 바로 왼쪽의 끝인 ‘생산지원부’였다. 내가 자리한 부서의 맡은 편에는 ‘생산지원담당‘ 임원실이 있었다. 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지나갔고, 부서에 먼저 와 있는 상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부서장은 아직 자리에 없었다. 아직 출근을 안 했을 수 도 있고, 아침 일찍 현장으로 나갔는지도 몰랐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안전화로 갈아 신었다. 출렁이는 바지 밑단을 주황색 발목 밴드로 묶었다. 발목 밴드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반질반질 때가 탔다. 안전화도 바꿀 때가 되었는지, 이리저리 상해서 볼품없었다. 나는 그 볼품없는 안전화가 좋았다. 열심히 돌아다녔다는 훈장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그게 마치 나처럼 느껴졌다. 이리저리 치여서 너덜너덜해진 안전화가 말이다.
서랍에서 칫솔과 치약을 꺼내서 화장실로 갔다. 사무실 밖에 있는 화장실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특히 아침의 화장실 칸에는 사람이 가득 차서 도통 나올 줄 몰랐다. 그곳에서는 어제 꽤나 힘겨운 회식을 보낸 사람들과 용변이 급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나는 양치를 했다. 왼손으로 뒷짐을 지고, 오른손으로 이를 닦았다. 나는 회사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나의 생각과 고민들이 다른 사람은 어떨지 궁금했다. 양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서 로그인을 했다. 메신저 창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나는 아웃룩을 켜고서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겠다.
다른 직장동료를 위해서, 인수인계와 남은 업무처리를 위한 글을 썼다. ‘퇴직인사’라는 제목의 글로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 전화와 메일로만 일처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그동안 도와줘서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지내라는 내용이 담긴 메일을 말이다.
그다음에는 동기와 선배들, 후배들을 위한 글을 썼다. 회사를 떠나는 입장에서 나의 생각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단순한 오지랖일지도 몰랐다.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서 조금은 자극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회사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조금은 생각을 더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가 생각을 '다른 사람은 공감을 할까?'라는 호기심에 글을 썼다. 예전부터 해왔던 생각이기 때문에 글을 적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메일을 다 쓰고 나서, 나는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메신저 창을 노란색 불'자리 비움'으로 바꿔놓았다. 벗어뒀던 근무복을 다시 걸치고 안전모를 들었다. 턱 끈을 조여 매고 건물을 천천히 내려갔다. 이번에 돌아오면 다양한 반응이 와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메일이 조금은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메일을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회사 메일을 쓰지 못할 것이다. 오늘 PC를 수거한다고 연락이 왔으니까 말이다. 이제 다시 우리 부서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끝이다. 이 거제도에서 보내는 마지막이 돌아온다. 나는 그렇게 마지막 출근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