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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Mar 18. 2022

끝까지 버티더라

영화, 리틀 포레스트

"너 주려고 처음부터 좀 찜 해둔 건데, 이 태풍에도 안 떨어지고 끝까지 버티더라. 너랑 다르게."

임용고사에 떨어지고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에게 소꿉친구 재하는 태풍 끝에 살아남은 사과 하나를 따서 건네준다. 정작 재하는 도시에 취직했다가 퇴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시작했다.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도전과 도망'의 차이점이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잔잔하고 먹음직스러운 영화다.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시골의 풍경과 세 친구들의 대화가 전부다. 그 속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의 고달픔과 농촌 사회의 정겨움을 비교하게 된다. 도시에서 도망치듯 내려온 혜원, 회사보다 농사가 좋다고 내려온 재하, 고향에서 벗어난 적 없는 은숙. 이 세명의 삶이 대비된다. 은숙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고 싶지만 머물러있다. 혜원은 고향을 떠났다가 잠깐 돌아왔다. 재하는 고향으로 돌아와 뿌리를 내렸다.


재하와 혜원, 둘 다 도시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방향은 달랐다. 재하는 농사라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내려왔지만 혜원은 허기를 채우려 내려왔다. 혜원이의 허기란,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먹는 편의점 도시락이 아니라 갓 지은 쌀밥과 배춧국에 담긴 마음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재하의 귀향과 혜원의 귀향이 뭐가 다를까.


사실 둘 다 도시 생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그 둘의 마음가짐은 전혀 다르다. 재하는 농사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지만 혜원은 고시 생활에서 도망친 셈이니까. 그래서 홀가분하게 농사에 집중하는 재하와는 다르게 혜원은 며칠만 있다가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결국 사계절을 농촌에서 보내는 것과는 다르게. 도전인지 도망인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만 정할 수 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미련을 털어 버릴 수 있는지, 나는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골에서 밥 해 먹고 힐링하는 영화가 아니라 나만의 작은 숲에서 고민하고 정리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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