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 맨
대체 왜 '그레이 맨'인가. 이유는 단순한데 '그레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CIA 암살 요원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덕분에 화려한 액션신과 카 체이싱이 가득하다. 줄거리는 회색보다 빨간 핏 빛에 더 가깝다. 총 쏘고 죽이고, 도망치고 쫓는 전형적인 액션 영화.
문제는 너무 전형적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시에라 식스'가 쫓기는 내용은 제임스 본과 존 윅이 떠오른다. 정부에 쫓기면서 추격을 뿌리치는 장면은 본,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총격전은 윅. 그리고 소녀를 보호해야 하는 점은 레옹까지 생각난다. 감독이 윈터 솔저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액션 신의 나이프 파이팅에서는 캡틴이 떠오른다. 실제로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가 빌런 역으로 출연한다. 나이프를 막아야 하는 역할에서 휘두르는 역할로.
가장 아쉬운 점은 쓸데없는 느끼함이다. 단 둘이서 주먹다짐을 벌인다거나 영예롭지 않다면서 싸우다가 내빼는 인도 킬러라던가. 그런 장면은 뜬금없기까지 하다. 존 윅에서 우리는 이미 개연성 따위는 개나 줬다.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갱단이 소탕하는 영화에서 우리는 왜 열광했던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액션신 때문 아닌가. 잘 빠진 액션에 쓸데없는 정의와 서사를 덧붙이는 건 더 유치해질 뿐이다. 제대로 된 서사를 통해 액션을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액션만 펑펑 터트리는 영화에서는.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재료를 가져온 곳이 액션 영화라는 점이다. 서사보다는 액션에 중점을 둔 덕분에 재미는 있다. 이곳저곳에서 잘 가져와서 스까먹는 비빔밥이 맛은 괜찮은 것처럼. 게다가 두 주연, 라이언 고슬링과 크리스 에반스라는 새빨간 매운맛까지 있다. 다만 이런 재료로 이런 맛을 낸다는 게 아쉬울 뿐. 별생각 없기 보기엔 나쁘지 않은 영화, '그레이 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