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캠핑을 가는 길에 들린 카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커피바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도착한 카페는 여기가 맞나 싶을정도로 조용한 곳에 있었다. 유독 검은 건물로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곳에 덩그러니 돌이 하나 놓여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서 들어가서 사람이 없었다. 마치 미술관 같이 적막한 분위기다. 살짝 광기어린 컨셉으로 온통 검은색을 칠했다. 바, 의자. 천장, 벽까지.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고 핸드드립 커피와 칵테일, 그리고 시그니처 음료를 팔고 있었다.
과테말라 칼리버스 라 시에라 게샤, 푸르러지다(變綠 한자는 변할 변에 푸르를 녹), 그리고 거무스름해지다(髮黑 한자는 터럭 발에 검을 흑)을 주문했다. 싱글 오리진 드립 커피를 제외한 다른 메뉴 이름은 한자로 된 이름이 많이 보였다. 푸르러지다와 거무스름해지다는 크림이 올라간 말차 라떼와 흑임자 라떼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굉장히 진한 말차와 흑임자 맛을 느낄수있다.
주르르 늘러내리는 말차와 흑임자를 보면 아마 유리 컵에 붓 같은걸로 칠하거나 소스 튜브통으로 쏴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밑에 진하게 깔려있어서 잘 저어서 마셔야한다.
과테말라 칼리버스 라 시에라 게샤는 라임, 청포도, 청사과 등의 컵노트가 적혀있었다. 음료들은 컨셉에 맞게 어두운 회색 돌로 만든 받침대에 나왔다. 한잔의 음료에 3개의 잔이 올려져서 나온다. 한잔은 탄산수, 한잔은 얼음컵, 한잔은 커피가 담긴 잔이다. 커피는 뜨겁게 추출한 커피를 식혀서 미지근하게 나왔다.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자, 살짝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동그란 얼음이 담긴 컵에 부어서 차게 만들고 마시면 상큼한 단 맛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청포도 컵노트가 왜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라임처럼 강렬한 산미는 아니라서 좋았다.
탄산수는 입 가심하고 커피를 마시라고 서빙하면서 말씀해주셨다. 커피가 담긴 잔을 자세히 보면 밑 바닥에 산 모형으로 들어가있었다. 아쉽게도 조명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다. 커피를 거의 다 마시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달까. 과테말라 게샤는 내가 볶고 있는 코스타리카 세로 산 루이스 화이트 허니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게샤가 조금 더 깔끔하긴 했지만 청포도 같은 뉘앙스는 비슷했다. 로스팅 시, 조금 더 세심하게 조절하면 더 비슷한 맛이 나지 않을까.
극한의 컨셉질이 이 공간을 고급스럽게 보여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화장실이 불빛으로 구분되어 헷갈리기 쉽다는 점이다. 밑 바닥에 파란색 불은 남자, 핑크 빛 불은 여자 화장실이라고. 그리고 의자의 손잡이가 없어서 무거운 나무 의자를 끌거나 당기기 어려웠다. 모두가 검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안쪽에 있는 하얀색 에어컨이 눈에 들어온다. 친구 말로는 진정한 광기는 저런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자기라면 에어컨도 무광 검정색으로 칠했을거라는 말을 했다.
이런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독특한 공간의 경험과 체험은 흥미롭기만 하다. 만약 나의 커피 바를 차린다면 어떤 느낌으로 살려야할까 고민이 되는 장소다. 정갈하면서 예쁘게 진열된 바가 참 마음에 들었다.